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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08. 2024

당신의 부킹 프라이스는 무엇인가요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말이다. 정확한 출처는 찾을 수가 없지만, 이토록 멋진 문장을 만든 사람은 분명 사람의 마음에 깊은 이해를 가진 현자거나 심리학과 관련해서 지식이 많은 이가 아닐까 싶다. 



삼프로TV에서 기획한 '위즈덤 칼리지'라는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 <마음의 지혜>에서 김경일 교수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최근 십여년 간 아주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소개한다. 행복을 인간이 목표로 삼아야할 가치가 아니라 삶에 필요한 사건이나 경험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 수명이 고작 60세였던 옛날에 비해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은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하고 그 기억을 갖고 있어야 긴 세월을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내 나이 고작 마흔 중반이지만 요즘처럼 이 말에 온마음으로 동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몇 달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보내보니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산다면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의미없는 삶은 결국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4월부터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한 무기력함은 불안과 좌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깊은 늪이었다. 그곳에선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라앉았다.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 경계선에 이르렀나 싶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늪속에서 허우적대는 대신 맨 땅에 발을 딛고 멀쩡히 서있었다. 이 쉬운 걸 여태 왜 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별다른 변곡점 없이 훅 바뀌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구절을 보며 깨달은 건 늪에 빠져있을 때 비해 요즘은 즐거운 기억, 자잘한 행복을 훨씬 더 많이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어둑해질 무렵 저녁놀에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면 밥짓느라 나무 타는 냄새가 동네에 가득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몽글몽글한 느낌!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지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내 기억 속에 숨어있던 행복을 무엇인가 살며시 건드리나보다.



또 20년 넘게 묵혀둔 바이올린을 꺼내 수리를 맡기며 다시 배울 생각을 하니 첫 데이트를 나가는 것 마냥 들뜬다. 연습할 시간이 없어 한두 달 배우다 그만 둘 확률이 높지만 지금은 그저 신날 뿐이다. 이런 설렘도 얼마만에 가져보는 감정인지!



길을 지나며 만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업어키운 조카가 생각나 미소짓게 된다. 입가에 케첩을 잔뜩 묻히며 핫도그를 오물거리던 모습, 작은 손과 발을 앙증맞게 움직이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따라 추던 모습... 내새끼마냥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런 기분 좋은 기억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문득문득 머리를 스치고 행복이 모락모락 솟아오를 수 있게 마음을 데운다. 이 기운이 충만해지면 불안과 우울의 늪을 만나도 빠져들지 않고 성큼성큼 건너버릴 수 있는걸까. 



김경일 교수가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문장과 함께 강조했던 건 '행복이라고 느낄 만한 최소한의 수준이 되는 일'이다. 학술용 전문 은어(?)로 부킹 프라이스라고 한단다. 이 부킹 프라이스를 많이 적립해둘 수록 어려움을 잘 견디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이론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유대인들의 삶을 떠받치고 있던 건 단순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살아남아 다시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였다.



행복을 경험한 개체는 생존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100세까지 마지못해 사는 삶은 원치 않지만 사는 동안은 행복하고 싶다. 매일 나의 부킹 프라이스를 하나씩 만들고 쌓아두면 내 남은 삶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나의 부킹 프라이스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다. 높은 하늘 아래 맑고 깨끗한 공기와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된다. 아름다운 가락과 노랫말에 가슴은 점점 말랑말랑해진다. 



행복이 뭐 별건가.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따라부를 수 있으며 좋아하는 이들에게 함께 듣자 공유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행복이지.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부킹 프라이스를 공유한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만큼은 당신도 행복해지길 바란다.




https://youtu.be/TydDcSCybUQ?si=PwCcsZ23eY0spM5r

https://youtu.be/t_NeW_3GkT8?si=32TBp9RrxsDsqr95

https://youtu.be/GJTFeyysOeE?si=f0S2_40cPr9Wp2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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