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한 바를 이룸.
네이버 사전에서 말하는 '성취'의 정의다. 한자어일 뿐 대단한 뜻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다. 그런데 왠지 느낌상 '성취'라는 단어는 거창한 목표에 갖다붙여야할 것만 같다.
설거지 한 일에 성취라는 단어를 쓰면 어울리지 않는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설거지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때는 그저 '한다'라는 동사만으로 충분하지만 설거지조차 하기 힘들 때면 오히려 성취가 더 알맞은 표현일 수 있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잠식 당하면 숨쉬고 자는 것 외엔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한다. 먹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겠다는건 아주 거창한 목표다. 오히려 설거지처럼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심리학자, 뇌과학자들이 해주는 전문성이 가득 담긴 조언이다.
왜 하필 설거지일까? 아마 생활 속에서 찾기 쉽고 난이도가 가장 낮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설거지부터 시작하라는 이유는 이 일이 어렵지도 않고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할 수 있기에 이것부터 시작해서 작은 성취감을 얻고 그 성취감을 발판으로 차차 더 큰 시도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무력감에 빠지면 설거지도 굉장히 큰 일이 된다.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 별것도 아닌 일이 얼마나 하기 힘든지. 설거지가 '성취할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보름 전까지도 무력감에 젖어있던 나는 설거지하기보다 조금 윗단계의 목표를 세웠다.
'공모전 응모하기'
유일한 목표였다. 안하고 도망갈 핑계를 만들지 않기 위한 장치로 글쓰기 챌린지 모임에 함께 써보자며 제안했고, 말을 꺼낸 장본인인 만큼 어떻게든 쓰지 않을까 하는 게 나름의 전략이었다.
원고지에 손글씨로 써서 제출해야하는 형식이었는데, 원고지는 진즉 사두었지만 글쓰기는 미루고 미루었다. 마감일 전 출국 전날에서야 낯선 원고지쓰기를 하고 우체국에 들러 발송까지 겨우 마쳤다. 수상하진 못했어도 내겐 충분히 의미있었다. 무기력 속에서도 해냈다는 사실이 좌절 속에 빠지지 않는 방패가 되어주었고 다음 목표를 세울 디딤돌이 되었으니까.
이번 달 내가 세운 목표는 브런치에 글 다섯 개 쓰기다. 고작 다섯 개라니, 설거지처럼 작은 일일 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한 건 다음 목표로 나아갈 새로운 디딤돌이기에 '한 달에 30개 글쓰기'처럼 원대한 목표는 아직 무리다. 이미 10월이 보름이나 지났거만 발행한 글은 아직 두 개뿐인걸 보면 글 다섯개는 내게 충분히 높은 수준이다. 다섯 개를 채우면 다음 달엔 열 개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차차 늘려가다보면 내년에는 매일 글쓰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억하자.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짓누를 땐 설거지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사실을. 그 작은 성취가 당신을 일상으로 되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