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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l 09. 2021

방랑의 과학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 과학 / Michael Bond

원제- Wayfinding 

부제- 인간은 어떻게 미지의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



#십년전 

이 책을 읽었다면 여행이 좀 쉬웠을까? 프랑스와 스페인 횡단하는 한 달 동안 평생 길 잃는 모든 경험 다 했다고 믿었는데. 자전거 타면 길 잃어버리는 일 따위 없을 줄 알았건만! 얼어붙은 길 위에서 자전거 끌고 곡성을 향해 가는 밤하늘은 서러웠다. 춥고, 배고프고, 개까지 짖어대는 두려움 속에서 잃어버린 건 길이었는데, 내 기억은 더욱 생생해지니 그날 뇌가 열일했나보다.


#과학 

힘을 빌려보자. 왜 길을 잃어버리는지.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지. 이제 그런 경험은 충분히 했으니까. 책이 나에게 희망을 준다. 나는 길을 잘 잃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억 속의 나의 어린시절이 첫번째 증명. 이곳저곳 싸돌아(울어머니 표현)다니고 어두워져야 들어오는 애였고, 외향적이고 성실하며 개방적인 성격에, 주위환경과 관계를 맺는 것에 적극적이라 길 찾기에 유용한 자질이고, 지리적 진실과 물리적 상황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세포 

열일한다. 머리방향세포는 우리 머리 속에서 나침판처럼 작동한다. 격자세포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정확한 육각형 패턴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위치를 공간에 기록한다. 경계세포는 담장, 가장자리, 색깔이나 질감이 바뀌는 시점과 그 경계에서 거리와 방향을 가르켜준다. 온 우주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깨우쳐주는 거다. 길을 찾는 첫 번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 지금을 알면 지나온 길을 기억하게 되고, 가야할 길을 찾게 된다.


#랜드마크 

정하는 것은 필수다. 여행지에서 유용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 가이드 따라다니는 패키지투어는 길 잃기에 딱좋다. 공간과 나와의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억하는 힘도 줄어든다. 여덟 살 아이들 가운데 84%가 주변환경을 속속들이 파악하여 심적지도를 그려 길을 찾는다고. 크기와 거리를 가늠하거나 구조물을 사이의 공간을 돌아다니는 경험은 어떤 뇌를 지니고 평생을 살아갈지를 결정해준단다.


#솔닛 

리베카 솔닛의 글이 자주 인용된다. 『길 잃기 안내서』의 사이언스 버전이랄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랜드마크가 없는 길찾기다. 하늘길과 바닷길은 어떻게 찾을까. GPS가 없던 시절, 위대한 탐험가들은 구름 속에서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횡단했고, 바람과 물이 전부인 곳에서 별과 바람에 의지하여 대양을 넘었다. 자연의 신호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은 과학보다 더 과학적이다. "내가 지나 온 길을 기억하는 것."이 열쇠다. 길 찾기의 힘은 관찰이다.


#백미

이 책의 백미는 저자의 길 잃기 체험이다. 읽다가 소름이 쫙_ 올라왔다.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건 순식간이다. 숨을 쉴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온다. 쇼핑하다가도 우리는 길을 잃는다. 이케아 매장에서 길 잃는 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우리는 날마다 길을 잃을 수 있다. 


#덧붙임

몇 년 후 섬진강 자전거 길을 다시 갔다. 곡성을 향해 갔던 그 길에 단풍이 들고 낙엽을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길 잃고 헤매던 곳에는 굽이마다 무덤이 있었다. 소름이 또 쫙_! 

길을 찾을 때, 우리의 눈은 보지 못하는 것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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