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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smelo Feb 03. 2024

우리는 손흥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2023 AFC 아시안컵 8강전

왜 앞선 4경기에서 단 1실점만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호주의 수비라인은 강하고 촘촘했다. 90분이 다 될 때까지 슈팅이 두세개에 그칠 정도로 우리 팀은 활로를 찾지 못했고 도저히 이 라인은 우리의 현재 실력으로 뚫을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져갔다.


그렇게 잠이라도 챙기자 하며 티비를 끄려 하는데 계속 선수들의 얼굴이 시야에 잡혔다. 결코 포기하지 않은, 그리고 갈수록 독해져가는 눈빛이었다. 쓰러져도 좀비처럼 일어서고 금방이라도 빼앗길 것 같은 볼도 탈압박으로 지켜내는 그들을 보며 맘속에서 의리 비슷한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들과 한 마음이 된 순간 손흥민이 박스 앞에서 볼을 잡았다. 90분 내내 지독했던 호주의 장신 수비수들의 협공에 좀처럼 슈팅 공간을 잡지 못하고 연계에 주력했던 그였다. 역시나 그때도 공간은 없었고 밀집한 수비수들의 압박이 시작됐지만 그는 집요하게 볼을 지켜내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 집념에 흔들렸는지 경기 내내 그토록 견고했던 호주의 수비진에 균열이 생겼다. 당황한 수비수가 뻗지 않았어도 될 발을 뻗었고 마침내 경기 종료 직전 패널티킥을 얻어냈다.


여기서 실축을 해도 욕먹지 않을 선수는 패널티킥을 얻어낸 당사자 손흥민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 황희찬이 나섰고 그는 그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며 자신이 생각한 그 위치와 속도로 정확하게 볼을 찼다.


손흥민은 연장 전반 황희찬이 얻어낸 프리킥을 결승골로 연결시켰다. 각도와 호주의 장신 수비진을 생각하면 이강인의 왼발과 잘라들어가는 헤딩슛이라는 시나리오를 그리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직 손의 오른발 그 하나의 옵션 뿐이었는데 그의 발끝에서 폭발하듯 떠난 볼은 미친듯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체력이 바닥에 이른 상황에서도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스프린트했다.


모두가 잘했지만 손흥민에 대한 특별한 감동에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려운 밤이었다.


우리는 손흥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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