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신년 기자회견
이번 기자회견은 청와대 출입 후 3번째 맞는 신년 회견이었다. 2018년은 출입한 지 한 달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원생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던 나는 '정책의 공백에 있는 인문사회계열 학문후속세대의 상황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신가' 같은 걸 물으려 했었다. 지금도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면에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개인 자격이 아닌 회사를 대표해 해도 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자신 없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이 힘 있게 올라가지 않았고 꽤 좋은 자리에 앉았음에도 질문권을 얻지 못했다.
2019년 회견에는 난 참석하지 않았다. 동료 기자들이 들어갔고 나는 기사 처리를 위해 춘추관에 남았다.
올해,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이 회견을 준비하듯 기자들도 회견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회견 사흘 전쯤부터였다. 그래서 질문 리스트를 매우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정치사회-민생경제-외교안보 순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각 영역별로 질문을 적게는 3개, 많게는 6개까지 준비했다. 질문권을 언제 얻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느 순서에 지목을 받더라도 자신 있게 입을 열려면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묻고 싶었던 건 '윤석열'이었다.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질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수행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2가지 차원에서 질문드리겠다. 첫째는 윤 총장의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에 대한 평가다. 대통령은 6개월 전 그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강조했다. 두 번째는 윤 총장의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다. 대통령은 그에게 검찰은 개혁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두 가지 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나아가, 그의 임기를 보장할 것인가' 이것이 최대 현안인 청와대-검찰의 갈등과 관련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다른 기자들과의 질문답변에서 어느 정도 언급이 나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물으려 했다.
1) 이번 검찰 간부 인사 배경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법무부는 특정 부문(특수부)에 치우치지 않고 형사*공판검사 위주의 발탁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작년 7월에는 이와 같은 콘셉트로 인사하지 않았는가? 6개월 만에 검찰 간부 인사 기조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개혁의 미진함에 대한 문책인가 수사에 대한 문책인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가
2) 법무부가 검찰의 직접 수사기능을 줄이는 직제개편을 단행했다. 검찰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 같은 개편 필요성이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할 때는 제기되지 않다가 현 정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추진되는 것을 두고 개혁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시는가
출입기자를 대표해 청와대 기자단 간사가 첫 질문을 했다. 대통령의 답변을 들으며 가장 먼저 준비한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질문 1)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2)를 물을 타이밍은 아직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 대한 평가를 하긴 했지만 구체성에 있어서 추가로 좀 더 분명히 입장을 들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상 첫 질문인 만큼 머릿속으로 오래 그려본 질문을 하는 게 생방송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실수가 없겠다고 여겼다. 판단이 끝나자 자신 있게 하늘색 다이어리를 든 손을 높이 들었다. 믿기지 않게,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다.
"두 번째 줄 안경 쓰신 분, 왼쪽에서 두 번째, 네 맞습니다"
그렇게 청와대 출입 2년 1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질문을 했다. 준비한 대로만 물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긴장했는지 '임기 보장' 부분을 빼먹은 채 질문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대통령은 "윤 총장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라는 측면에선 이미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검찰개혁에 앞장선다면 더 큰 신뢰를 받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리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된 질문에 이어, 질문 1)이 나왔다. 서울신문 기자였다. 워딩은 다소 달랐지만 취지는 같았다. '윤석열 손발 잘라내기 아니냐'라고 좀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다소 아쉬웠다. 질문은 검찰 간부 대규모 인사의 배경을 묻는 것인데, 답변의 초점은 인사 과정에서 윤 총장이 보인 '항명적 태도'를 비판하는 것에만 맞춰졌기 때문이다. "윤 총장의 인사협의 요청 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다면 대통령의 그런 답변이 맞지만, 질문은 분명히 "윤 총장 수족 잘라내기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였던 것이다.
이 질문까지, 검찰과 관련한 질문이 4개 나왔다. 간사가 포괄적으로 물어본 것 하나, 내 질문 하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된 질문 하나, 그리고 질문 1). 최대 현안이었던 것치곤 분명 부족했다. 1)에 대한 답변도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수족 잘라내기인가. 그렇다면 왜인가'에 대한 답변이 있어야 했고 그러려면 추가 질문이 필요했다. 또한 2)에 대한 질문도 나와야 했다. 분명 준비한 기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날카로운 질문을 준비한 기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진행자격인 고민정 대변인은 질문 4개가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이미 답변 시간을 포함해 시간이 상당 부분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분야의 질문을 유도했고 그다음 질문자는 마침 '협치내각'에 대해 물었다. 필요한 질문이었다. 다만 다시, 검찰 관련 응답이 오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검찰 관련 일문일답의 마지막이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한 차례 더 나왔을 뿐이었다. 모든 현안을 다 다뤄야 하는 회견 형식의 한계였다.
이어진 민생경제,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준비한 질문들이 있었다. 동료 기자들의 질문에서 소화된 내용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추가 질문의 동기를 강하게 느꼈지만 이미 질문권을 한 차례 얻었던 입장에서 또 손을 드는 것에는 주저함이 들었다. 손을 든다고 대통령이 지목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묻지 못한 리스트들은 그냥 그대로 휘발되었다. 완전히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 수증기라도 몇 개 집어다가 이곳에 박제해두고자 한다.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민생경제
--대통령께서 신년 들어 신산업 분야에 있어서의 '맞춤형 조정기구'를 통한 사회적 타협을 종종 언급하고 있다. 공유경제, 특히 <타다>와 관련한 언급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혁신으로 인한 갈등관리를 민간의 타협에 의존한다면 혁신의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좀 더 과감하게 갈등관리에 나서면서 민간의 혁신을 지원해줘야 할 것 같은데, 실제 행보는 정부가 혁신 전도사로 나서고는 있지만 첨예한 갈등관리에는 '타협'만 강조하면서 주춤하는 느낌도 든다. 어떻게 보시는가
--국토부 자료를 보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15억 이상 고가주택은 물론이고 9억 이하 주택까지 거래량이 급감했다. 장기적으로 보유세를 높여나가고 거래세를 낮춰주는 세제개편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문제는 다주택자나 1주택자는 물론 무주택자에게까지 적용되는 대출규제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으면 이 집을 누군가 사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집을 또 다른 다주택자가 사는 걸 권장하는 게 아니라면, 무주택자가 사야 균형이 맞을 거다. 그런데 무주택자가 집을 사자니 대출규제에 부딪힌다. 15억 이상은 원천 금지고 9억 원 넘겨도 LTV 비율이 낮아진다. 그래서 정부 정책이 결과적으로 '현금부자'인 다주택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이렇게 거래량이 급감하면 가격 안정화가 장기적으로 정착되는 데는 어렵다는 경험도 그간 축적돼 있는데, 그럼에도 이 같은 대출규제 정책이 주택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
@외교안보
--북한이 지난 전원회의 보도에서 자신들의 핵시험, ICBM 시험 발사 유예 약속이 근거가 없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예로 든 것이 3가지다. 한미연합훈련, 남측의 첨단무기 도입, 대북제재다. 북한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또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이 가운데 일부를 조정해나갈 계획이 있나. 또 김정은 위원장 답방 여건 마련 등을 위한 남북 고위급대화 등 공개적인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할 계획이 있으신가 (이 질문은 동료 통일부 출입기자가 추천해준 질문인데, 적실하다고 느꼈었다)
--좀 본질적인 질문이다. 북한은 관계개선 없이는 체제안보의 이른바 '보검'인 핵을 포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러나 미국 등 국제사회는 비핵화 없이는 관계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상황인데, 둘 다 동시병행적으로 하자는 해법은 한계가 노정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서, 그간 구축된 신뢰를 토대로 나머지 한쪽을 견인하는 방법은 불가능한가
-그동안 북미 비핵화 협상은 큰 틀에서 '제재 완화'와 '비핵화'를 동시 병행적으로 이행한다는 흐름에서 진행돼 왔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김계관 성명 등을 통해 '제재와 핵을 맞바꾸는 방식의 협상은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작년 10월 스톡홀름에서의 북미 실무회담 결렬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이 이런 원칙을 고수한다면 앞으로 비핵화 협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