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휴학 2년이 된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말이다. 2017년 8월 박사과정으로 입학해 한 학기를 다녔다. 학기를 마치기 직전 보도국 복귀가 결정돼, 텀페이퍼를 쓰는 둥 마는 둥 하고 첫 학기를 마쳤다.이듬해인 2018년 2월 어느 날, 잠깐 반차를 내고 학교로 가 휴학계를 냈다.
그때 정들었던 310호 연구실로 들어갔다. 짐을 정리하면서 그 공간에서 붙잡고 있던 화두들, 문화정치, 감정사회학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문화연구자라면 누구나 접하는 질문, 문화란 무엇인가. 리처드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을 읽으면서 동료들과 나눴던 토론이 생각났다. 문화, 인간이라는 유적 존재가 '삶'을 버텨내기 위해 창출한 유무형의 총체의 집합. 나름대로 정리했던 그런 개념들이 머릿속을 다시 스쳤다.
2017년 하반기,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성암관 310호 연구실
당시 지도교수님과 잠깐 면담했다. 선생님은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보신 듯했다. 복학의 의지를 불태우며 휴학계를 내는 경우 말이다. 당시의 나처럼. 그러나 선생님은 동시에 그런 경우들의 흔한 결말에 대해서도 많이 접해보신 듯했다. 일상에 휩쓸려 복학 의지는 휘발되고 결국 제적으로 귀결되는 흐름 말이다. 학칙상 허용되는 휴학 최대기간은 2년이다. 그 안에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된다. 보통은 제적 이후에도 의지를 꺾지 않으며 '재입학' 의사를 나타내지만, 실제로 재입학으로 돌아와 무사히 과정을 마친 경우에 대한 학습경험은 많지 않으신 듯했다.
내게도 그런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만의 현업 복귀였나. 거의 6년 만이었다. 기자생활의 1/3 이상을 현업에서 떠나 있다가 복귀하는 거였다. 게다가 다른 출입처도 아니고 청와대였다. 어렵게 돌아온 곳에서 기자로 살아가다가 2년 안에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쿨하게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은 없었다.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감 있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세상 일이 내 의지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국면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30대 후반에 성공회대에서 석사를 마쳤던 것도, 연세대에 박사를 왔던 것도 당초의 내 의지나 계획이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했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날을 떠올렸다. 2017년 6월 2일, 토요일이다. 그날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면접시험이 있었다. 일찍 일어나 750A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전혀 막히지 않고 승차 25분 만에 연세대 동문 정류장에 당도했다. 내려서 성암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청송대를 지나게 되었다.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특히 그 햇볕... 청송대 나무들을 뚫고 숲 곳곳에 내리쬐이는 햇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장면을 느끼고 싶어 잠깐 청송대에 앉았다. 아무 근거 없이, 면접날 이런 날이라니 이 여정 또한 나에게 운명인가 같은 생각을 했었다.
2017년 6월 2일, 청송대의 아침이었다
2년 전 그때만 해도, 2020년 1월 오늘날까지 청와대 출입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일을 해도 다른 부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지만 2년 전 그때도 그랬듯 지금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에 대해 성실하고 치열하게 취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감 없이 풍부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지금 시점에선 이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잠정적인 결론이다.
가끔은 자기 자신의 주도적 판단으로 삶의 주요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지를 분명히 결정하는 듯한 이들에 대해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가까이는 얼마 전 또 다른 중요한 결심을 한, 친구이자 취재원이 그랬다. 그는 나에게 2번이나 그런 유사한 자극을 줬다. 나는 왜 내 의지적으로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금 가만히 보니 그 역시 어떤 '물결'의 흐름을 받아들인 결정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히 주체적인 결정이었지만, 주체를 흔들고 떠밀고 가는 '흐름'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행위자는 구조와 분리될 수 없다. 장(場)과도 분리될 수 없다. 주체적이고 의지적인 결정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지금 나를 밀고 가는 흐름, 내가 서 있는 장이나 구조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면 말이다.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다.
문화연구가 아니라 저널리즘을 전공했더라면 어땠을까? 문화연구는, 너무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전공이 어렵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래도 그건 지금의 일과 연속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화연구 전공은 현재의 일과 연속성이 없다. 2년 여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열심히 읽었던 스튜어트 홀 등의 책을 펴보면 지금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나름 기초를 닦아가던 이론 공부가 완전히, Totally Completely 휘발돼버렸다. 지금 글을 쓰면서 '교양의 효용'의 저자가 누구였지.. 무슨 호가트였지..라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사이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한 동료들이 있다. '문화연구자'로서의 자격은 그들에게 주어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2014년 가을 어느 날,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도 내 결정은 변함없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는 저널리즘 전공이 없었다. 저널리즘 전공이 있는 다른 학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현업에서 쫓겨난 지 장기화된 마당에 다시 기사가 어쩌고 보도 원칙이 어쩌고 하고 싶지 않았다. 타사의 기자나 피디가 있는 곳으로 가 '내 상황이 어떻소' 하고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 미지의 공간에서 완전히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곳을 나는 찾았고 그 답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문화연구 전공 외에는 없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의 흔한 세미나 모습
아마도 다음 달 선생님들을 다시 한번씩 만나야 할 거다. 2020년 2월을 앞두고 있는 내가 스스로 보는 내 삶의 흐름은 이러한데, 타자의 시선으로 봤을 땐 어떤 지점들이 보이는지 알고 싶다. 종합적으로 말씀을 들어보고 싶다. 동료들의 의견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