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편덕후 Jan 30. 2021

조수석에서

남편덕후 비긴즈 2

"그럼 원래 전도사님을 하셨던 거예요?"
"...네"
"아...그럼 신학을 전공하신 거네요?"
"그렇죠"

핸들을 꺾으며 사이드미러에 신경이 쏠린 탓인지 그의 대답은 짧고 느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교회 청년부 간사 생활로 일명 '간사병'을 앓고 있던 나는, 방어적인 사람의 벽을 깨는 것에 희열을 느끼던 참이었다.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상처가 있을수록 다가가서 마음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 익숙했다.
특히 연애 경험이 없고 모범생으로 자란 남자아이들은 간절하게 친해지고 싶은 캐릭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미용사가 잘라 준 듯한 반듯한 헤어스타일과 엄마가 골라준 st의 얌전한 옷차림,
살짝 짧아진 면바지와 얇은 안경테... 그런 친구들은 나와 교집합이 없었기 때문에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야! 너 일로 와 봐!" 하며 짓궂게 친한 척을 하다 보면 옅은 미소가 번지면서 대화가 이어지는데 그게 그렇게 짜릿하데...즉흥과 우발이 없는 인생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깊은 생각과 신중한 말씨는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늘 신선한 귀감이 되었다.

딱 그런 캐릭터 같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계속 집요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교회를 그만두신 거예요?"
"네, 교회를 나왔어요."
"왜요 왜요?"
"교회가 저랑 잘 맞지 않더라고요."

교회라니 교회라니. 나의 최대의 관심사. 어젯밤에도 일기장에 교회를 규탄하는 "10개조 반박문"을 쓰지 않았나.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게 함정이지만.

"아 저도 요즘 교회랑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교회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닌 정말 좋은 교회긴 한데요.
청년부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양육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거든요.
그게 초대교회의 모습이랑 많이 다른 거 같고..."

초면에 가까운 첫 대화에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늘어놓자 그 사람도 마음을 조금 열었는지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강단에서 세월호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보수적 정치색을 가진 장로님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와 시대가 만들어낸 악 때문에 가장 연약한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그의 설교는 신기하게도 몇몇 어른들의 분노를 샀다. 어떤 분은 심방을 핑계로 집을 방문해도 되냐며, 무슨 책이 있는지 봐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교조의 세례를 받은 전도사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라는 특이한 논리로 담임 목사님께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교회를 나와 낮에는 집 근처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며 지냈다. 성경과 역사, 문명, 철학 등 무게 있는 공부를 병행하기엔 공장 일이 힘에 부쳤고,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출판사에 지원했다고 했다.

"교회가 한 몸 됨을 많이 잃었죠. 특히 사역자들은 자신을 지켜 줄 몸 된 교회를 갖기 힘들고..."
"다시 좋은 교회를 찾아가시면 되잖아요?"
"그러려면 방법은 이력서를 넣는 것이거든요. 기업이랑 똑같죠.
인간적 관계 없이 물건 고르듯 사역자를 뽑게 되는 거예요.
사역자들은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하고, 교회에서는 학벌이나 조건이 좋은 사역자를 뽑고.
그렇게 들어간 교회에서 몇 년 있으면 또 옮겨야 하는 상황이 오고...그게 싫더라고요.
그건 한 몸 된 지체로서의 교회가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지금은.”
“아...”
“세상과 성경을 치열하게 분별하고 읽어내지 못하면 사역도 정직하게 할 수 없고요...
종교적인 권력에 대한 욕망만 생길 뿐이에요..."

초행길에 내비게이션과 백미러를 번갈아 보느라 그의 눈동자는 바빴지만, 또박또박 진중하게 이어가는 목소리에는 진심과 슬픔이 함께 묻어났다.

"그럼 어떤 공부를 하세요? 대학원?"
"제 공부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
"그럼 학원 같은 데 다니시는 거예요?"
"아니요. 제도권 공부는 아니고 혼자 책 보고, 주말에는 소수로 강독 모임도 하고요…"

공부를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한다는 게 되게 틀린 말 같은데 또 되게 맞는 말로 들렸다. 내 질문 속에는 공부를 제도권 내의 단계로 보는 편협함이 들어있었다. 어느 대학, 어느 대학원을 가는 것으로 그 사람의 교육 수준이 결정된다는 편견. 아니 편견보다는 통념에 가까운 이 생각을 어떻게 거슬러 혼자 공부를 하고 계실까. 교회 안에 들어온 자본이라는 우상을 간파해보고 싶어 읽었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사유를 더 날카롭게 하고 싶어 읽는 중이라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교회 안에서는 흔히 '세상 문화' 정도로 치부되는 학문인데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성경에 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의 뇌 용량이 공간 없음을 알리는 바람에 기억할 수 없다는 게 슬프기만 하구나. 왜 나는 진작 휴대폰 녹음 기능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자책할 무렵, 아쉽게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검은 코트를 매일 입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