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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교육’을 ‘通涉교육+協業훈련’으로 재정립

개념과 통찰-5

by 김덕현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

'미래사회는 어떤 인재상을 필요로 할까?'라는 주제는 학계와 산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논의해 온 문제이다. 그동안 T자형, 파이(ㅠ)형, A자형, 대(大)자형 등의 인재상이 거론된 바 있다. 도요타가 제시한 'T자형'은 한 분야를 깊게('수직)' 알면서 다른 분야도 넓게('수평') 이해하는 인재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이 제시한 '파이형' 인재는 2개의 전문 분야를 갖고 있으면서 여러 파트를 통합하는 능력을 가진 인재이다. 안철수 의원이 제시했다는 'A자형' 인재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갖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를 이해하고,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인재이다. 필자가 제시한 '大자형' 인재는 파이형 또는 A자형 인재상에 목표('大자의 머리 부분') 지향 능력을 덧붙인 것이다. 공자(孔子)가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그릇-도구가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者)라고 한 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3년 5월에 발간한 <The Future of Jobs Report>에서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기량을 아래 4 그룹으로 제시하였다. ‘인지적 기량’과 ‘기술 기량’은 개인의 역량이고 ‘참여 기량’과 ‘관리 기량’은 팀의 멤버에게 필요한 기량이다. 한편, WEF와 맥킨지 등은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기량으로 직무 수행에 꼭 필요한 하드(hard) 스킬 외에 직무 성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소프트(soft) 스킬 즉,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팀워크, 리더십, 감성 지능, 문제해결 능력, 자기 관리, 유연성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사회는 탁월한 개인 역량을 갖춘, 독불장군 같은 인재보다는 팀의 리더나 팔로워로서 동료와 함께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인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개인과 팀을 연결하고 협업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1) 인지적 기량(Cognitive Skills):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창의성 등 사고 능력.

2) 참여 기량(Engagement Skills):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대인 관계 능력.

3) 관리 기량(Management Skills): 프로젝트 관리, 리더십, 전략적 계획 수립 능력.

4) 기술 기량(Technology Skills): 디지털 도구와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융합교육’, 기대와 현실

우리나라는 2011년 5월 교육부가 '과학기술/예술 융합(STEAM) 교육 활성화 방안’을 제안함에 따라 각급 학교에서 ‘융합교육’을 시작하였다. 이후, 초중고등학교는 다양한 '창의/융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대학에서는 2017년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융합전공제 도입’을 포함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상당히 많은 대학에 융합학과가 개설되었다. STEAM은 미국 인재 양성 정책의 근간인 STEM을 우리나라가 재정의한 것이다. STEM은 1990년대에 미국 과학재단이(NSF)이 제시한 것으로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Mathematics(수학)를 가리키며, STEAM은 거기에 Arts(예술)을 덧붙인 것이다.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미래 인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 지식은 물론, 창의성의 근간인 예술에 대한 이해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로, 스탠포드大 디자인(기계설계)학부는 경영, 기술, 인간가치(human value) 등 3가지 영역에서 균형 있는 지식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영은 디자인 결과가 생존성(viability)을, 기술은 타당성(feasibility)을, 인간가치는 활용성과 바람직함(usability & desirability)을 갖추도록 하려는 것이다. STEM이든 STEAM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교육 목표'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영역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학자/연구자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기업이든 정부든 현장에서 일할 인재는 2가지 이상의 전문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 기관에서는 ‘융합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학문/지식을 통합해서 교육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간의 융합교육을 통해 통합 교과목과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융합 교과목을 강의할 교사/교수의 숫자나 역량이 부족하고 학생들은 STEM을 포함한 핵심 영역의 깊이 있는 지식은 오히려 부족한 결과가 된 것, 그리고 교육 방식 혁신(예: 프로젝트 수행 및 실습 확대, 팀 티칭)에 필요한 예산, 시설 등이 부족한 것 등은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대교협(2022)에 의하면 대학의 융합학과 중 상당수(예: 공학 계열 경우 개설 학과의 약 60%)는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과 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였다. 겉모습만 ‘융합학과’ 일뿐 교육 목표와 접근 방법 등이 불명확하거나 잘못된 데서 비롯된 결과인 것이다. 교육 수요자 중 하나인 기업에서는 ‘여러 가지를 아는 융합인재가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융합교육은 그동안 긍정적 성과도 있었지만, 교육 목표와 실행 사이에 괴리가 있고 결과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만족도도 낮아서 개선할 점이 많은 상태인 것이다.


교육 목표는 ‘융합인재’가 아닌 ‘通涉인재’로

융합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이 필요하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목표와 접근방법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융합교육의 목표가 (1) 혼자서도 문제를 잘 해결하는 탁월한 인재 양성인지, 아니면 (2) 1~2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타인과 협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 양성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교육의 접근방법은 목표가 어느 쪽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융합교육은 (1)을 목표로 한 명의 인재에게 여러 가지 지식을 퍼부어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키우려 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잡스는 정규 교육기관이 키운 인재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경험을 스스로 습득하고 일찍 실패 경험을 맛봄으로써 도전정신을 드높인 특이한 인재이다. (2)를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융합교육’이 아니라 ‘通涉(형)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通涉교육’이어야 한다. A자형 인재, 파이형 인재 등이 표방한 것처럼 적어도 한 가지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분야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폭넓은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면 피교육자의 적성이나 역량에 맞는 심화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폭넓은 지식’은 스탠포드大 디자인학부처럼, 기술+경영+인문학 식의 조합이면 충분할 것이다. 국내/외 선도기업의 리더들 중에는 이공계 출신으로 경영 수업을 받은 분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열린 마음’은 다양한 협업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 경험을 쌓음으로써 얻게 될 것이다.


융합교육의 목표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것이라면, 이름부터 융합인재, 융합교육이 아닌 通涉인재, 通涉교육으로 바꾸고 協業훈련을 확대해야 한다.융합인재’라는 말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기에 남과 경쟁하는 독불장군을 연상하게 한다. ‘융합교육’은 교육(과정)을 왜 융합해야 하는지, 융합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려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융합학과’는 단순히 여러 학문에서 다루는 지식/기술을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만드는 학과(: 수단)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수렴’하는 지식/기술을 가르치는 학과(: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생각이 행동과 습관을 만드는 것처럼, 잘못된 용어가 잘못된 목표와 접근방법을 만들 수 있다.


通涉교육 및 協業훈련 확대 방안

通涉인재는 타고난 기질과 능력, 가정과 사회 여건, 학교/직장의 교육훈련 등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모든 인재를 ‘通涉인재’로 키울 필요는 없으며, 본인 희망이나 능력에 따라 특정 영역만을 깊이 있게 다루는 ‘전문인재’도 육성해야 한다. '通涉인재'도 여러 가지 지식/학문을 모두에게 똑같이 부과하는 식으로 육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의 희망이나 능력에 따라 2개 이상의 공학을 전공할 수도 있고, 공학과 사회과학(또는 인문학, 예술)을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규 교육기관이 모든 것을 가르칠 수는 없기에 오히려 기초 학문에 집중하고 여건 변화에 따라 필요한 지식/경험을 학습, 수용하는 식의 적응성과 태도를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네르바(Minerva) 대학의 여러 가지 실험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교실에서는 능동형/거꾸로/온라인(active/flipped/online) & 문제해결 중심 학습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전 세계 여러 국가/도시를 순방하면서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훈련(learn by doing)을 실시하고 있다.


통섭교육의 또 한 가지 목표는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출 뿐만 아니라 타 분야 전문가들과 하나의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통섭인재는 다른 멤버들의 이질성/다양성을 인정, 포용하고 서로로 연결할 수 있는 역량(예: 기술 용어/개념 이해, 의사소통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각급 학교 융합교육에 팀 프로젝트나 공동 연구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개인 성과보다 팀 성과를 중시하는 협업훈련이 확대되어야 한다. 영국은 초등학생 교육에서도 팀원들이 자율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도록 훈련하고 있다(참조: https://m.blog.naver.com/dhkim53/221047402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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