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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현 Dec 18. 2023

플랫폼 생태계와 국가혁신생태계

플랫폼 경제-11

디지털 시대의 국가혁신시스템

   국가혁신시스템(NIS: National Innovation System)은 1980년대 이후 발전한 개념으로 대학, 연구기관, 기업, 정부/공공기관 등 액터(actor)가 상호작용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키는 생태계를 가리킨다(참조: https://brunch.co.kr/@duk-hyun/21). 1990년대 이후 기업 내/외부 거래와 협업을 위한 전자(상)거래, 정부/공공기관의 내부 통합과 외부 서비스를 위한 전자정부 등 디지털 시스템이 혁신생태계를 뒷받침해 왔다. 디지털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①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맨 위의 (디지털) 서비스(예: 인터넷 쇼핑), ②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예: 상품추천, 지불/결제, 배송), ③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④ 사용자로부터 가장 멀리, 깊은 곳에 있는 (디지털) 인프라 등 계층구조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인프라 서비스(IaaS), 플랫폼 서비스(PaaS), 애플리케이션 서비스(SaaS)로 나누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인프라는 HW, 시스템 SW, 통신(망)을, 플랫폼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공통 지원하는 메시지 송/수신, 데이터 관리, 작업/프로세스 연결, 보안/보호 등을 담당한다. 


   디지털 시대의 NIS는 개념적으로는 (1) 액터별 혁신 활동과 일상업무를 지원하는 디지털 교육/R&D, 디지털 생산-유통, 디지털 정부 등 수직적(vertical) 시스템과 (2) 모든 액터들을 공통적으로 지원하는 수평적(horizontal)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수평적 시스템은 NIS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금융기관, 투자자, 특허/정보 관리, 혁신/사업관리, 표준화 등에 대한 지원 기능과 모든 액터를 위한 공통 서비스를 포함한다. 디지털 시대의 NIS는 궁극적으로 모든 혁신 주체들의 활동 대부분을 디지털로 전환한 디지털 국가(Digital Nation)가 될 것이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디지털 국가는 정부가 이끌어가는 수직적 거버넌스가 아니라 산학연을 포함하는 민간의 다양한 액터들과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적 거버넌스로 운영되어야 한다. 기술 측면에서 디지털 국가는 인프라와 플랫폼을 포함하는 수평적 시스템, 그리고 개인생활, 산업경제, 사회/정치, 문화예술 등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포함하는 수직적 시스템의 집합체이다. 디지털 국가의 효용성은 예를 들면, 이용자인 국민이 느끼는 편의성과 만족도로, 효과성은 각 액터별 활동 성과가 국가 차원에서 통합되는 수준으로, 그리고 효율성은 투입된 자원의 중복을 배제하고 낭비 요소를 최소화한 것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주도해 온 생태계의 문제점

   플랫폼 경제는 공유(sharing) 경제, 크라우드(crowd) 경제, 토큰(token) 경제 등을 촉발하면서 디지털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로 ‘크라우드 경제’란 크라우드 소싱이나 크라우드 펀딩처럼 전문가가 아닌 일반대중이 가진 지식이나 자산을 집적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경제를 가리킨다. ‘토큰 경제’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통화(또는 보상수단)가 되는 경제를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개발한 플랫폼(기술/부품)이 다수 기업/개인에게 판매하는 플랫폼 상품으로, 나아가 여러 그룹의 수요자, 보완(생산)자 등을 끌어들여서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BM)로 발전한 것이다. 인터넷 상용화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성공한 플랫폼 기업들은 엄청난 기업가치를 얻었지만 플랫폼 생태계나 지역/국가/인류 차원의 기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플랫폼 BM을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CSR)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과는 별개 문제이다. 예를 들면, 구글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지만, 인류 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해 소위 ‘문샷(moonshot)’ 과제에 도전해 왔고, 애플은 수명이 다한 제품을 회수해서 희토류와 귀금속을 재사용하는 식의 노력을 계속해 왔다. 이는 일반기업과 똑같은 CSR 노력일 뿐이며, 플랫폼 생태계나 플랫폼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플랫폼 경제의 미래에 대해 세계경제포럼(WEF)을 포함한 전문기관들은 긍정적 전망을 하고 있지만, 현실에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플랫폼 생태계 자체의 위축(또는 궤멸) 가능성과 블록체인 기술 확산에 의한 기존 중앙집중식 생태계의 재편성(또는 와해) 가능성을 꼽았다.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은 창업 초기에는 각각 차별화된 BM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지만, 점차 통신, 금융, 유통, 헬스케어, 미디어, 모빌리티 등 인접 또는 타 사업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그 결과, 동일/유사 시장에서 플랫폼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내부 혁신 동력이 줄어들고 생태계 차원의 혁신도 지연되고 있다. 국내 대표적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가 겪고 있는 문제도 비슷한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은 지난 글(https://brunch.co.kr/@duk-hyun/98)에서 소개한 것처럼 BM 자체에 대한 혁신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가치혁신과 운영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양자컴퓨팅의 보편화 시기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의한 Web 3.0의 보편화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이 될 수 있다. 에스토니아 디지털 정부의 근간인 X-Road 플랫폼과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Smart Nation)’의 CODEX 플랫폼은 메시징 및 트랜잭션 처리에 블록체인 기반의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논리적 분산/분권화를 확대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은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생태계에 대한 국가별 정부 정책 비교

   플랫폼 경제가 발전하고 소수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급성장하는 동안 주요 국가 정부는 플랫폼 생태계에 대해 조금씩 다른 정책을 펼쳐왔다. 모든 정부가 플랫폼 기술 발전에 투자하고 불공정 경쟁/거래를 규제해서 산업경제 측면의 질서를 유지해서 일반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려 한 것은 공통적이지만, 규제 대상이나 강도는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글로벌 시장에서 독/과점 수준의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을 다수 보유한 미국은 기업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반면, 지배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이 거의 없는 EU는 자국 시장, 기업과 국민의 권익 보호를 목표로 적극적인 법/제도(예: 개인정보보호법 GDPR/2018년 시행, 디지털시장법 DMA/2023년 시행, 디지털서비스법 DSA/2024년 시행)를 만들어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해 왔다. EU는 또한, 독일이 2019년부터 자체 개발하기 시작한 GAIA-X 플랫폼(PaaS)을 기반으로 영향력 있는 제품과 기업을 육성하고 지역 시장/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예: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화웨이)이 국내 시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고 있기에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보다는 국내 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진 기업(예: 네이버, 카카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U나 미국의 법/제도를 참조하면서 촉진 이전에 규제가 앞서가거나 자국 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주도로 국가 차원의 공공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어서 국내 산업/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생활에 편익을 제공해 온 국가들도 있다. 에스토니아는 2000년대 초부터 전자정부 구축을 시작해서 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X-Road를 정부 주도로 개발한 후 정부/민간의 약 900개 기관을 연결하고 공공서비스의 99%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X-Road는 2023년 기준, 핀란드, 아제르바이젠, 독일, 일본, 베트남, 브라질 등 20여 개 국가에서 약 52,000 사용자가 3천여 개 서비스를 통해 연간 27억 개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글로벌 플랫폼 생태계(‘X-Tee’라고 함)로 발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 말부터 전자정부 사업을 시작했고 1992년 IT2000 종합계획, 2006년 지능국가종합계획(iNation 2015)을 수립하였다. 2014년 11월에는 스마트 국가 전략(Smart Nation Initiative)을 수립하고 정부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전반을 디지털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국가 전략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것을 목표로 디지털 정부/경제/사회 건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 주도로 개발한 CODEX(Core Operations Development Environment and eXchange) 플랫폼은 데이터 아키텍처 표준과 지원 도구, 인프라-미들웨어-애플리케이션(즉, IaaS-PaaS-SaaS)에 해당하는 기술 스택 등을 포함한다.     

플랫폼 생태계 연계통합을 통한 디지털 국가 건설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긍정적 성과와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만들고 있는 이 시기에 건전한 플랫폼 생태계(PE)를 조성을 위한 정부 역할은 더욱더 중요하다. ‘촉진과 규제’라는 2가지 수단의 효과적 활용 여부에 따라 국가는 물론 인류 발전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한 국가별 정책은 편의상 ‘촉진 우선’ 정책과 ‘규제 우선’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는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어서 민간 기업이나 국민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민간 부문의 생태계가 조성되도록 하는 식이었다.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미국, 중국, EU, 우리나라 등은 국내(또는 해외)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과 정부/공공 플랫폼을 혁신하는 정책을 별개로 추진함에 따라 양방향 정책이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가지 유형의 정부 전략은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지만, 국가 차원의 기술/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온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든다는 궁극적 목표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는 미국, 중국, EU, 우리나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그러나 강한 국가이다. 전자에 속하는 국가들은 정부가 스타트업처럼 기민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정치/사회 여건을 가진 것이 강점이었을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국가들은 전자에 속하는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리거시(legacy) 시스템을 연계, 통합해야 하는 약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점에서 중간 위치에 있는 국가로서 전자정부를 넘어서는 디지털 국가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민간의 문제와 정부/공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일부 연구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민관 협력을 통한 국가 차원 플랫폼 구축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故 이민화(2017)는 산업별(예: 자동차, 조선, 의료,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들을 국가 차원의 산업플랫폼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민간의 산업플랫폼에 공공데이터 플랫폼을 합쳐서 ‘버추얼 코리아 플랫폼’(가칭 ‘K-로드’)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은경(2018)은 전 산업을 포괄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 플랫폼을 ‘산업융합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이는 기술보다는 법/제도 개선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산업융합’은 전통산업은 물론 여러 가지 융합(신)산업을 대상으로 하기에 HW나 SW를 포함한 기술요소뿐만 아니라 제도와 문화, 가치 측정/평가의 차이를 조정, 통합하는 관리요소도 융합 대상이다. 기술요소의 융합은 이질적인 데이터를 공유하고 프로세스를 연동하는 개방형 플랫폼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들 연구는 용어/개념에 대한 정비와 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 혁신생태계는 이제 민간 부문과 정부/공공 부문이 각각 개발, 운영해 온 혁신생태계 또는 영리 목적 PE와 비영리 목적 PE를 연계, 통합함으로써 시너지를 만들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PE는 지금까지 플랫폼 기업 중심의 가치시스템으로 인식해 왔지만, 영리 목적 PE에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함하면 국가 차원 혁신생태계에 수렴하게 된다. 한편, 정부/공공기관 중심의 전자정부와 비영리 목적 PE를 모든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로 확대하면 그것 또한 국가 차원 혁신생태계에 수렴하게 된다. 2가지 PE는 궁극적으로 공통의 국가 목표를 향한 투자이므로 양방향의 노력을 국가 차원으로 확장해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전략인 것이다. 2가지 전략은 ‘디지털 국가’라는 하나의 개념적/논리적 프레임워크와 이를 뒷받침하는 개방형 플랫폼 아키텍처, 그리고 협업적 거버넌스로 연결,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이민화(2017), 산업혁신과 산업플랫폼, KCERN 40차 공개포럼 보고서.

전은경(2018), “산업융합 플랫폼의 현황 및 개선방안”, NARS현안분석, v.31, 국회입법조사처, 2018. 11. 29.

에스토니아 디지털 정부 홈페이지, https://e-estonia.com/

싱가포르 스마트 국가 홈페이지, https://smartnation.gov.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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