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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J Mar 10. 2024

이중언어환경의 한국어

바스크 한글학교 이야기.

일주일에 한 번씩 프랑스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프로젝트 회의를 하는데 거기서 나왔던 내용이다.


 "이중언어환경에 놓은 3-4세 아이의 단어 수는 약 900-1000개 정도이다. 이 단어들을 각각의 언어(우리 아이들의 경우 한국어, 바스크어, 스페인어)에 나누어 담게 된다. 이 시기를 견디고 10살이 되면 각 언어당 단어가 약 2배씩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약 4000여 개. 여기에서 개인적 노력이 더해지면 약 3배의 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중언어환경에 놓인 4-5세 아동의 경우, 이 시기가 가장 고비로 설상가상 "발음문제"가 생기게 되면 많은 부모들이 (현지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언어가 아닌) 한국어를 놓아버린다. 


하지만 이 시기를 견디고 계속 한국어에 노출시키면 어느 순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언어 모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부모들의 한계를 아이들의 한계로 단정 짓지 말자는 것이다. (이 시기를 참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부모들의 한계)  여러 언어를 하는 이 아이는 이미 그들의 부모보다 훨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은 바스크어,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언어환경이라 어린아이들의 고충이 많은 곳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라 한국어를 모국어 내지는 계승어로 갖고 있는 환경이라면 아이의 고충은 더욱 배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외동포가족의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데, 최근 그 마저도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생겼다.  


학교에서는 바스크어, 집에서는 한국어, 친구들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경우인데, 아이의 부모는 본인 아이의 스페인어가 같은 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능숙지 않아서 친구들과 못 어울린다는 고민이 있었다. 이 아이의 부모가 내린 결정은 스페인어 과외수업을 시키고 한국어 수업은 일단 접기로.


나는 부모에게 간곡하게 얘기했다. 나랑 한국어 공부를 안 하더라도 집에서 읽기, 쓰기는 집에서라도 따로 시키셨으면 한다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데, 굳이 무릅쓰고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또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어는 한 사람을 담아내는 창이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이점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갖고 있는 언어가 모두 그저 그런 수준이 되면 어떻게 하나요? 하고 걱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보통 그렇게 되지는 않고 주 언어가 하나 생기면 그 언어를 기준으로 차례대로  줄을 세우게 된다. (내 아이들의 경우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같은 수준, 한국어, 영어, 바스크어)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아이들의 주 언어가 생길랑 말랑한 3-5살 때가 엄마로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 한글학교를 접기로 한 그 부모의 입장이 그래서 이해가 된다. 좀 더 편하게 가고 싶을 거다. 당연히. 


나중에 가면 그 모든 고생이 할 만한 것이었다고 자평할 날이 온다고 지금 아무리 얘기해도,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므로 그들에게 와닿지 않았을 거라 짐작한다.  


사실 한글학교는 한국어만 교육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한국문화교육, 즉 정체성 교육에 많은 수업시간을 할당한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재외동포로서 현지인의 정체성을 가진 동시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 몸에 조화롭게 갖고 있는 "멋진 사람" 이 되도록 돕는 것이 한글학교 교사인 나의 목표이다. 


재외동포가정의 아이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계 친구들과의 소통과 공유 등, 한 가정 안에서 그 모두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기에 재외한글학교가 그 부분을 맡고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나의 선배님 말씀을 약간 변용하여, 나의 손을 거쳐간 우리 아이들이 100 퍼센트 한국인, 100 퍼센트 스페인인, 200 퍼센트 세계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한국어 교육은 내 학생들이 결국 그렇게 되기 위한 첫돌이 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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