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혜성처럼 등장한 동방신기는 이런 노래를 불렀었다. 하루만 네 방에 침대가 되고 싶어. 우 베이베.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 우 베이베. 이 가사를 지금에 빗대어 바꿔보면 어떨까. 하루만 너의 스마트폰이 되고 싶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스마트폰일 테니!
스마트폰은 정말 많이, 생각 이상으로 우리의 모든 틈을 차지한다. 주문한 밥이 나오기 전, 라면의 물이 끓기 전, 약속 시간에 맞춰 가면서, 버스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심지어 걸으면서도.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아낌없이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니 적어도 걸을 때는 휴대폰을 보지 않는 편이 좋다.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오는지 눈으로 보고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의 스크린 타임을 확인한다. 오전 열 시에 일어나 지금 오후 여섯 시가 될 때까지의 스크린타임은 1시간 18분이다. 인스타그램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그다음이 인터넷 검색, 그다음이 카카오톡이다. 스마트폰을 깨운 횟수는 26회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었다. 스크린을 오래 보지 않아서 그런지 눈이나 어깨가 뻐근한 횟수도 확실히 줄었다.
어제 글을 올린 후, 나의 글을 읽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뭐, 머리 깎고 절이라도 들어가겠다는 거? 아니, 뭐 그렇게 극단 적인 건 아니고……. 어떤 매체를 모두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좀 줄이겠다는 거지, 필요할 때 하더라도 필요하지 않을 때 시간을 그곳에 쏟지 않겠다는 뭐 그런 거지, 책도 좀 많이 읽고. 나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버벅거렸고, 친구는 또 말했다. 야, 디지털 시대에, 이 발전하는 시대에 퇴보하면 어떡하니. 마구마구 이용해야지. 친구는 그러고도 엉뚱한 소리를 더 하다가 나의 답장을 '읽씹'한 채 사라졌다.
나는 사라진 '1'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1'은(물론 카카오톡을 사용한다면 다들 알겠지만), 상대방이 나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다. 숫자 '1'이 사라지면, 상대방이 나의 메시지를 읽었다는 뜻이고, 사라지지 않으면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친구에게 보낸 답장에 '1'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그 후로 친구에게 온 답장은 없었다. 나는 괜히 서운하다. 왜 읽고 답장을 하지 않은 거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이것도 문제다. 예전에는 상대가 나의 문자 메시지를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알 방도가 없었지 않나. 읽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어떠한 무슨 문제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 기다림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던 그런 때가 분명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나라는 존재를 끝없이 찾아내는, 어느 공포영화에 나오는 무서운 괴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행동이 모두 기록된다고나 할까.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검색했는지, 누구의 메시지를 읽고 무시했는지, 혹은 무시당했는지, 그런 모든 것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새겨지는 듯하다. 이 작은 스마트폰에. 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물론, 스마트폰은 우리 일상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누군가는 두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정보의 바다를 탐험하고, 기능을 마음껏 쓴다.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지도로 길을 찾을 수 있고, 무언가 계산하거나, 무언가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으니 최고다. 그러나, 과하면 독이 되듯, 나는 지금 과한 스마트폰 중독에 빠졌으므로 이러한 것을 조금 멀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히 쓰는 방식으로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깨우기 전에 나를 먼저 깨우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꾼 나는, 앞으로 천천히 스마트폰을 조금 줄이면서 일어나는 삶의 거대한 반동(?)을 기록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