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입구역, 숨은 짜장면 맛집 "청해루"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은, 유튜브 맛집 채널 검색에도 나오지 않는, 나만 아는 맛집이 하나쯤 있다는 사실은 요즘 같은 시대엔 제법 든든한 자산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그 집의 주력 메뉴가 짜장면이라면, 동네에 조용히 숨어 지내던 고수가 사실은 조선 제일검이었다는, 그런 비밀스러운 기쁨에 가까워집니다. 저에겐 그런 보물 같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짜장면이 간절한 날이면, 여지없이 찾게되는 한성대입구역 근처 "청해루" 입니다.
간판은 세월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낡았고, 네이버에 검색해도 리뷰 몇 개 올라오지 않는, 말 그대로 ‘동네 중국집’입니다. 모르면 그냥 스쳐 지나치기 쉬운, 그저 그런 평범한 가게처럼 보이죠. 그런데 몇 해 전,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다가 점심 무렵 들어간 이 집에서, 짜장면 한 젓가락을 후루룩 넘기자마자, 고개가 절로 갸웃해졌습니다. “어? 이거, 뭐지?”
그날 이후, "청해루"는 저희 가족피셜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간짜장을 내는 집이 되었습니다.
몇년씩 연속으로 미슐랭 스타를 받는 중식당의 짜장면도, 트러플과 한우가 들어간 프리미엄 짜장면도 경험해봤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게도 다시 이 소박한 가게 앞에 다시 서 있게 되더군요. 진짜 맛이라는 건 결국, 이름값이나 플레이팅보다도 시간과 진심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 집에서 종종 하게 됩니다.
사장님은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말수가 적은 분입니다. 몇 번 다니다 보니 “간짜장 곱배기 맞으시죠?” 하고 먼저 물어보실 정도로 우리를 기억해주시죠. 그 짧은 한마디에 묘하게 정이 묻어나고, 그런 온기가 이 집의 분위기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릇이 눈앞에 놓이는 순간, 따끈한 면 위로 갓 볶아낸 짜장 소스가 넉넉하게 올려져 나옵니다. 가장 먼저 춘장의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이내 쎈 불에서 볶아진 파와 마늘, 양파, 돼지고기의 향이 층층이 피어오릅니다. 향만으로도 이미 소스의 깊이가 짐작됩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짜장 소스가 면발 하나하나에 고루 스며든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자체로 마음이 느긋해지고, 어쩐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젓가락을 들어 면을 천천히 말아 올리고, 한 입 크게 베어뭅니다.
처음은 카라멜라이즈된 양파의 단맛이 부드럽게 혀끝을 감싸고, 이내 춘장의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혀의 중심을 점령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집 고기의 질이 다릅니다. 값싼 고기에서 흔히 느껴지는 퍽퍽함이 아닌, 육즙이 살아 있는 단단한 고기. 씹을수록 고소함이 퍼지며 짜장 소스의 맛을 든든히 떠받쳐줍니다.
몇 입은 조심스럽게 음미합니다.
면의 탄력, 소스의 농도, 고기의 결까지 하나하나 새기듯 받아들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젓가락이 점점 바빠집니다. 후루룩, 후루룩—속도가 붙습니다. 짜장면이란 음식은 원래 그런 면이 있지요. 너무 정갈하게 먹는 것보다, 조금 급하게, 리듬감 있게 먹을 때 더 제맛이 나는 음식. 그 순간, 짜장면은 그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내 안의 허기와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음식이 됩니다.
쫄깃한 면발, 부드러운 고기, 달큰해지는 양파.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재료들이 짜장이라는 이름 아래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그 맛은 점점 농도를 더해갑니다. 저는 반쯤 먹고 나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립니다. 소스의 깊이에 매콤한 기운이 더해지면 느끼함은 말끔히 정리되고, 감칠맛은 한층 더 또렷해지죠. 침샘이 다시 반응합니다. 그리고 3분의 1쯤 남았을 때, 식초를 톡톡 뿌립니다. 산뜻한 산미가 입안의 풍경을 환기시키며, 처음의 달콤함과 중간의 매콤함, 마지막의 새콤함까지. 한 그릇 안에서 완결되는 맛의 여정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집이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사장님도 여유 있게 음식을 만들어주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이런 집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도 듭니다.
정직하게 맛있는 음식이란, 결국 오래 살아남는 힘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청해루의 간짜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비주얼은 아닙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왜 이 집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처음엔 평범해 보이지만, 먹을수록 깊이를 알게 되고,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나는 음식.
그래서 결국은 다시, 그 낡은 간판 앞에 서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