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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은 버티는 자에게 온다

영화 《자산어보》 리뷰

by papamoon


요즘 제 인생의 화두는 단순합니다. "버티는 삶."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이어오다 보니,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갑니다.

형님도, 누나도, 동생도, 친구도, 선배와 후배도 어느순간 각자의 길로 흩어졌습니다.

서로의 등을 내주던 온기가 사라지자, 남은 자리에는 헛헛한 공허가 드리워졌습니다.

불안은 저의 몫이 되었고, 그 불안은 하루하루 어깨 위에 무게를 더합니다.

최근 큰 딸이 유학을 떠난 순간부터, 저의 불안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절실한 사명감"입니다.

큰 아이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또 작은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끝낼 때까지,

그때까지는 현 직장에서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는 절실한 사명감이 제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무거운 바람입니다.

그런 제 마음에 깊이 들어온 영화가 바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였습니다.

몇 해 전 극장에서 보았을 때도 좋았지만,

최근 다시 넷플릭스로 영화를 마주했을 때는 전과는 다른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의 국면이 달라진 탓이겠지요.

무엇보다 영화 초반, 정조대왕이 정약전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제 심장을 세차게 울렸습니다.

단 몇 줄의 대사였지만, 그것은 마치 200년을 건너와 지금 제 삶을 응시하며 내뱉는 조언 같았습니다.

“관리의 첫 번째 덕목이 무엇인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다. 사방에서 칼이 들어오고, 오물을 뒤집어쓰는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
내 너희 형제를 귀하게 쓸 날이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 버티거라.”


버틴다는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

우리는 흔히 버틴다는 말을 소극적인 인내와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자산어보》가 보여주는 버팀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자리를 지키는 적극적인 행위에 가깝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날을 기다리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놓지 않는 것.

정조가 정약전에게 당부했던 말은 곧 제 삶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피곤해도, 서글퍼도, 두려워도 버텨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들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흑백의 화면, 그 안의 무수한 색

《자산어보》는 흑백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흑백은 색을 잃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색을 품은 충만함처럼 느껴집니다. 일렁이는 바다의 은빛, 창호지를 스며드는 햇살, 세월의 주름이 새겨진 얼굴들.

그 모든 장면이 흑백 덕분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감독 이준익은 “컬러는 역사의 인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고,

흑백은 우리가 과거의 인물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안 저는 200년 전 흑산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현실은 늘 어둡고 무겁게만 보이지만, 그 속을 오래 들여다보면 뜻밖의 빛이 있습니다.

정약전이 ‘흑산’을 ‘자산’으로 새롭게 불렀듯,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건 결국 인간의 눈과 마음입니다.


정약전과 창대, 서로를 부른 이름

영화의 중심에는 정약전(설경구)과 창대(변요한)가 있습니다.

양반과 천민, 학자와 어부. 시작은 멀었으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며

결국은 벗이 되는 과정이 영화의 가장 큰 감동입니다.

정약전은 바다를 연구하며 백성을 이롭게 하는 글을 쓰려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길을 아는 이는 책이 아니라 창대였습니다.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자미 다니는 길은 가자미가 안다.”

이 한마디는 학문이 백성을 만나야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혜였습니다.

반대로 창대는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스승이 없었습니다.

정약전은 그에게 사서삼경을 가르치며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줍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가 됩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정약전이 《자산어보》 속에 “창대에 따르면”이라는 기록을 남긴 부분입니다.

그것은 창대를 더 이상 이름 없는 백성이 아니라, 고유한 이름을 가진 한 개인으로 세운 행위였습니다.

이름을 불러 존재를 세우는 일, 그것은 곧 개인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흑산에서 자산으로, 절망의 땅을 바꾸다

정약전은 자신의 유배지를 "흑산"이 아니라 "자산"이라 불렀습니다.

‘검을 흑(黑)’ 대신 ‘깊을 자(玆)’를 택한 순간,

그 땅은 절망의 섬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의 터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식의 혁명이었습니다.

짙고 깊은 어둠을 희망으로 전환하는 행위. 절망을 기회로 바꾸는 인간의 힘.

정약전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흑산에서 자산으로 바꾸었습니다.


파랑새의 푸른빛, 버틴 자에게만 보이는 희망

영화의 마지막에 정약전은 파랑새를 봅니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푸른빛.

그것은 정약전이 평생 꿈꾸던 세상의 색이자, 창대에게 남겨주려던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끝내 그는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했지만,

그가 버텨낸 시간은 《자산어보》라는 책과 창대라는 제자를 남겼습니다.

버팀은 곧 유산이 되었고, 그 유산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버티는 삶,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자산어보》를 보고 저는 다시금 버틴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버틴다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정약전이 공부를 놓지 않았듯, 창대가 신분의 한계를 넘어 배우려 했듯,

저 역시 제 자리에서 버티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회를 위해.

그 버팀이 고단하고 고독할지라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단단해집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흑백에도 무수한 색이 숨어 있다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고유한 이름을 가진 소중한 개인이라는 것이라고.

《자산어보》는 200년 전의 이야기지만 놀랍도록 현재적입니다.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지금 우리가 버티고 있는 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젠가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푸른빛 같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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