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북스 '고급 한국어 학습사전 2015년 개정판'.
네 번째 호오기록은 첫 문장을 한참 못 찾아 차일피일 미뤘다. 마침 우연히 읽은 기사에서 첫 문장을 채집했다. '멍청이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른바 '명징과 직조 사태'가 현 상황을 명징하게 표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앎을 드러내는 것은 (내) 무식을 폭로할 여지가 있기에 잘못이라는 당당함의 범람은 상황 일부에 그친다. 알게 된 것만 알겠다는 의지는 이제 시대정신이다. '본인이 접한 부분적 기사나 인증샷이 세상의 전부라고 인식하는 유아기·자기중심적 사고'(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가 성인에게서 확인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엄한 시기에 분투하는 기관이 국립국어원이다. 글에 맞춤법이 틀렸단 지적이 나치즘에 비견되는 때에 어문규범을 수호한다. 사흘을 사흘로 적으면 '4일'-4일간은 나흘이다-라고 쓰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이들이 활동하는 오늘날, 가장 고독한 기관임이 틀림없다. 날짜 서수를 쓰지 말란 후안무치함은 '알게 된 것만 알겠다는 의지'에서 발로된 '네가 나를 이해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국어원은 왕왕 조롱받는 기관이기도 하다. 조롱의 일부는 표준어를 위시한 어문규범에 대한 다소 교조적인 태도에서 기인하지만, 대부분은 발화자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서다. 경험상, 글에서 맞춤법은 부차라고 강변하는 이는 대체로 맞춤법을 틀린다.
국어원이 그나마 품위 있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이다. 어문규범, 어법, 표준국어대사전에 관해 문의하는 곳이다. 노래 실력이 없어서 노래방에서 노래하지 않았다면 '노래를 안 한 것'이냐 '노래를 못 한 것'이냐는 맥빠진 질문이 올라와도 국어원은 '의도와 맥락에 따라 잘 구분해 쓰시라'라고 친절히 안내한다.
물론 '맹한' 질문만 있진 않다. 대부분 진지하다.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게시'해야 할지 '게재'해야 할지 고민인 사람도, 강아지가 '기'는지, '걷'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다. 참고로 두 경우에 언급된 두 단어를 모두 사용 가능하다. '마니또'의 규범 표기-마니토-를 묻는 이도, '트다'와 '틔우다'는 의미 차이가 없는데 틔우다라는 사동 표현이 남은 사유를 구하는한 이도 있다. 글을 바르게 쓰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다.
무성의한 답변은 찾기 어렵다. 국어원은 트다와 틔우다를 두고는 내부회의까지 거쳐 형태는 주동과 사동으로 다르지만, 의미는 차이 나지 않는 특수한 경우라고 결론지어줬다.
'우리말샘'에 표제어 '영어 사전'은 영어와 사전 사이 띄어쓰기가 있는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선 이 같은 띄어쓰기를 찾을 수 없는 까닭을 묻는 글도 있다. 국어원은 '영어 사전'으로 표기를 맞추기로 하고 이 안건을 심의회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시해'라는 단어를 둔 질문에 대응도 인상 깊다. 사극 작가가 아니라면 쓸 일 없는 단어다. 질문자의 궁금증은 임금을 살해했을 땐 시해라고 쓰면 되는데 '임금이 아닌 왕족'을 살해했을 땐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냔 것이었다. 현재 사전상 시해 뜻은 '부모나 임금을 죽임'이다.
처음에 국어원은 임금이 아닌 왕족 등에 시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전형적이지 않다고 답한다. 시륙과 시살 등 유의어도 안내한다.
무엇인가 찜찜했는지, 국어원은 사흘 뒤 사전 담당 부서에 확인 중이라고 추가 회답을 단다. 그리고 한 달 뒤 자그마치 조선왕조실록을 뒤져, 윗사람을 죽인 때 시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확인하고 사전 뜻풀이를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다.
얼마나 성실한 응대인가.
온라인 가나다에서 오가는 질문과 답변은 어쩌면 세상의 원리와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다. '이름 따위 어찌 됐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세우고 바꾸는 첫 단계가 정명이다. 사이비를 바로잡는 첫 단계도 정명이다. '성실한 사회생활'은 '열정페이'란 이름을 얻었을 때, '짓궂은 농담'은 성희롱으로 규정됐을 때 비로소 없앨 대상이 됐다.
특히 말은 권력의 도구다. 전문어는 권력 행사 도구이고 은어는 저항 도구다. 모두가 알아듣는 말을 만드는 작업은 곧 힘을 평탄화하는 일이다.
통일된 어문규범을 정하고 어떤 대상을 부르는 말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국어원은 그 중요한 일을 조용히 수행한다. 지식의 정본을 곰비임비 쌓는다. 언어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라면 세상을 넓히고 있다. 그래서 가끔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을 둘러보면 재밌다. 그곳에선 나긋하게 열전을 치르는 국어 전공자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