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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꽃 Jul 14. 2021

콩나물국밥집일지

콩나물국밥집 일지 (1)


 그러게.. 뭐하러 그랬을까??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조바심을 내며 살았던가 싶은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또 어쩜 그렇게도 사소하고 치사한 일에 자존심을 세우느랴 같이 있는 사람의 감정이나 자존심보다는 내 뜻을 관철하는 데 급급해서 쓸데없는 고집과 편견에 사로잡혀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지금까지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 것일까?? 
내가 가진 확신들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이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관점, 그 출발이 어디에서부터이고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명명백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을 살면서 나는 대체 무얼 목적으로 이길 것도 질 것도 없는 상처뿐인 싸움만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게 병을 부른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8월 중순이후 나는 가게에서 물러난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가게는 순항을 계속하고 매출은 큰 변화 없이 잘 굴러가고 있고  남편은 나처럼 주방에서 냄비 닦고 벽타일 닦고 하지 않아도, 각종 야채들을  일일이 모양 잡아 썰지 않아도, 미주알고주알 주방언니들한테 잔소리하지 않아도 가게는 잘 굴러가고 있다.  직원들도 본연의 업무들을 척척 잘 해내고 있고 손님들도 여전히 잊지 않고 가게를 찾아주신다.   
   
노트북 cc카메라화면으로 단골 손님 얼굴이 보이면 나는 집안에 앉았다가도 아이코.. 저 분 또 오셨네.. 하고 와락 반갑다.  그리고 여전히 그 손님이 우리가게를 찾아오시는 그 소중한 발걸음과 변함없는 마음에 또 왈칵 고맙다.  마음이 찡하고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음이 감사해서 다시 감사하단 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차 항암때는 잘 먹어야 한다고 한우고기도 먹고 장어구이를 싸갖고 들어갔는데 이후 점점 관리가 소홀해지더니 외레 평소보다 먹성이 약해지면서 3차 항암 직전에 먹는 것을 소홀히 하고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
 항암치료 부작용 중 오심이나 구토 못지않게 변비가 있다.  그리고, 변비가 생기면 즉시 응급실 오라고 여기저기 내용마다에 적혀 있다.
  특히 항암 치료 후 1주일에서 열흘정도는 항암 약물로 인해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수치가 특히 떨어져 있는 시기인데 이때 혼자 함부로 관장을 하다가는 점막 세포에 세균이 침입하고 그로인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응급실로 오라고 퇴원시 주의사항에 간호사가 당부한 내용도 있다.

  항암 직후부터 화장실 가는 일이 편치 않더니 5일이 지나 6일이 될 때까지 나는 이런 일로 어찌 병원을 간단 말이냐 하면서 내 의지로 해결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 하늘이 노래지고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되어서야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남편 손에 이끌려 일산암센타 응급실로 급히 이동될 수 밖에 없었다.  
  환자가 되는 순간 여자사람은 잠시 여성성도 내려놓고, 자존심이나 수치심도 모른 척 하고 온전히 정상적인 심신의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는 기꺼이 본인의 품위를 애써 저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게 내 자신이란 사실은  왜 그렇게 속상한 일이 되는지...  
  

  응급실에서는 도착하는 즉시 피검사를 먼저 검사하고, 피검사 결과 여러 가지 숫치들이 정상권에 들어야 관장을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도대체 항암치료를 한다는 것은 그 독한 약물을 이겨내는 몸의 통증과 제반 휴유증의 문제 뿐 아니라, 이렇게 병원 응급실 앞 화장실 변기에 글리세린을 쏟아내는 일까지 정말 궁극적인 암 치료와는 상관없는 지독한 수모이면서 통증을 겪으면서 처음 인간의 한계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토록 사소한 먹는 일, 또 그토록 사소한 싸는 일, 그토록 사소한 자는 일 - 이런 위대한 그 어느 하나도 잘못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등진다는 사실, 그리고 현대의학이나 의사 혹은 가족 그 누구도 이걸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아!!!  아픈 자여!!!  
나는 진심으로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떠올렸고, 눈물이 났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암센타 화장실에서도 시원하게 해결을 보지 못한 채로 집으로 귀가했고 종일 굶었었고 추위에, 변비에 고생했던 심신은 계속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다.  (하지만 처방받은 약은 정말 유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아침에 준비해 두었던 미역국을 얼른 끓여서  국물하고 미역건더기라도 좀 먹으라고 끓여서 식탁에 차려 주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뜨끈뜨끈한 국물의 열기가 볼에 닿자 마치 잃었던 미각이 살아난 듯 난 허겁지겁 금세 미역국을 떠먹기 시작했다.  반그릇 이상 미역국을 먹자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과 함께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아이처럼 엉 엉 큰소리를 내며 미역국을 먹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티슈를 내게 내밀었다.  
 

 남편이 끓인 미역국은 싱거웠지만 나는 두 그릇이나 먹었다.  티슈에 코를 힘차게 풀고 나자 곧  온 몸이 훈훈해지고 막혔던 어떤 기운이 풀리면서 마음도 평정을 되찾았고 곧이어 온 몸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남편의 수고가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또 났다.  

  그로부터 며칠간은 대장이 편하지 않아 좀 더 고생은 했다.  하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왔고  변비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먹는 음식마다 각별히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변비, 변비가 심한 사람들이 가끔 산고와 비교할 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   

   지금 가장 불편한 것은 손발저림 증상이다.  열 개의 발가락에 마치 얼음이라도 박힌 듯 발가락 끝이 얼얼하고 느낌은 동상 걸린 듯 무감각하다.   이것은 약물에 의한 말초신경의 손상으로 신경에 독성이 신경병증을 일으킨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항암이후 수개월이후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런 증상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오후시간이 되면 발가락 저림은 좀 더 심해져서 저녁 잠자리에 들 무렵이 되면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온 몸은 계속 춥게 느껴지고 한기가 느껴져 으슬으슬 춥다.  시간 날 때마다 문지르고 비비고 맛사지를 하지만, 도무지 저림 증상은 사라지지가 않는다.   하루 15분씩 온수에 발담고 앉아 족욕도 해 보지만, 별 차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말초신경병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혈액검사가 좋다고 하니 항암회차를 빨리 줄이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자유의지대로 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그런 시간에 대해 아무런 혜택이 없을 뿐 아니라 금쪽같은 시간에 병과 싸우느랴 심신이 지치고 스스로 꿈꿀 수 있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  그러므로 현실에 참기 어려운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다.  그러니 건강해서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먹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공기처럼, 물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이 그냥 주어졌다고 망각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건강하게 무탈하게 그냥 보낸 사소한 하루, 누군가는 간절히 희망하는 그 하루!

  
** 오늘 오후엔 친구 경숙이의 아들이 행정고시 최종합격 소식이 있었다.  나는 잠시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경숙이.. 바라보기만 해도 편안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은 내 친구 경숙이.. 기특한 아들, 원준아!!  합격을 축하하고 정말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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