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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꽃 Jan 20. 2022

콩나물국밥집 일지 (2)

콩나물국밥집일지 

콩나물국밥집일지 (2) 

류시화시인의 새 수필집을 택배로 받아서 읽기 시작하다가,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이 누군가의 인생의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문장에서  문득 떠오르는 고객이 있었다. 

육십중반쯤? 혹은 칠십세 초반 되어보이던 그 남자 손님은 몇몇 지인과 함께 오시기도하였고, 가끔은 혼자서도 식사를 오셨는데 눈가에 자글한 주름에 여유있는 농담을 한번씩해주곤 하셨는데, 그분의 농담은 힘들고 지쳐있는 나와 우리 직원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목소리가 우렁차서 작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도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다 웃을 정도로 컸고, 거침없으며 씩씩한 분이셨다.
그 분은 건설업을 하셨었고, 학교를 많이 지으셨으며 지방 어디어디에 본인이 참여했던 국민학교건물이 있다고 그랬지만, 가족 관계가 불편해졌고, 아내와 이혼을 했고, 다 큰 자식들은 엄마곁으로 갔고 지금은 아무와도 연락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깊은 병이 걸리기 전까지는 몇 번쯤은 직원들 먹으라고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아마도 교회같은 곳에 기증한) 빵도 가져다 주시고, 음료수나 혹은 과일도 갖다 주셨었다.
그랬던 그 분이 뜨문뜨문 방문 횟수가 줄어들고 한동안은 안 보인다 싶었는데, 어쩌다 오실때면 갈수록 얼굴빛이 까맣게 변해서 오곤 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는, 같이 오시던 지인분이 넌지시 저 양반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그 말을 전해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곤 아주 한동안 또 안 보였는데 마지막 뵈었던 그날은, 얼굴은 연탄처럼 까매졌고, 복수가 차오른 배는 언뜻 보기에도 저래서 어찌 견딜까 싶을정도로 부어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한동안 안 보여 걱정했는데, 괜찮으세요??”
하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다.
“아, 글쎄 이렇게 배에 복수가 자꾸 차올라 걷지를 못하겠으니, 휴.. 힘들어서..
휴… 먹지도 못하겠고.. 근데 또 먹어야 살 것 같고..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
밥도 못 얻어먹어.. “

말씀하시는 목소리도 기운이 하나도 없고, 뼈만 붙어있는듯 말라버린 몸이
어떻게 병을 이겨낼까싶어 마음이 초조했다.
드시게 좋게 콩나물국밥을  죽처럼 푹 끓여서 내어드렸으나, 국밥을 앞에 받아놓고도 드실 엄두가 나질 않는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다.
짐짓 모르는척만 하고 있기가 참 힘들었다.

바짝 코 앞에 앉아서는 앞접시에 몇 숟갈을 덜어내고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어 식혀서  자.. 제가 좀 거들어 드릴 테니 천천히 몇 술이라도 떠보세요..하고 손에 숟가락을 쥐어 드렸다.
그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며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신다.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몇 숟가락을 드시면 또 내가 앞접시에 불은 콩나물국밥은 떠서 덜어 후후 불어서
숟가락을 쥐어 드렸다.
몇 번을 더 드시고는,
“너무 먹고 싶었었어. 이제 속도 좀 든든하고 힘이 나네..”
이렇게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
식사 몇 숟갈에 얼굴빛도 달라보이고 기운이 좀 나는 듯이 느껴졌다.
“내일은요, 저희가게 바로 앞에 저 삼계탕집 보이시죠? 저기 가셔서 흐물흐물하도록 오래오래 닭을 고아달라고 하셔서 닭 살과 죽을 좀 드세요. 콩나물만 가지고는 힘이 안나니까,  오늘 가셔서 잠 푹 잘 주무시고,  내일도 꼭 힘내셔서 나오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그래.. 내일은 운동도 할 겸 슬슬 걸어나와 닭 죽 꼭 먹을게.. 그런 것 쯤은 내가 혼자서도 다 해 먹었는데.. 알았어. 나와서 먹어볼게.”

그리고는 몇십분을 더 앉아서 가게 여기저기 눈 여겨 보시고, 홀 서빙 언니들과 몇 마디 농담도 하시고, 다른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자 슬그머니 일어나서 손짓으로 인사하고 가셨다.
조심하시라고, 가시는 길도 조심하시고, 내일도 꼭 뵙자고 인사를 그렇게 드렸건만,...하지만, 2016년이 갔고,  2017년이 다 가도록 그 분은 보이지를 않고, 함께 오시던 지인분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내일모레면 또 올 한 해가 다 가는데, 우스개 소리도 곧잘 던져주시고, 목소리도
엄청 컸던 그 아저씨는 지금은 이름도 없어진 국민학교 저 위쪽 하늘에 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류시화의 수필집에 나오는 것 처럼 내가 드린 그 콩나물국밥이 그 분에겐  누군가의 마지막 손길이었을까?

생은 때론 막막하다. 항아리는 깨어지고 집에 먹을 것을 기다리는 어린 것들 눈망울은 눈에 밟히고 온 몸은 땀범벅으로 피곤이 엄습하고, 해는 뉘엇뉘엇 서산을 넘어섰고, 갈길은 구만리인데, 그때 문득 어디선가 짐을 들어주는 따스한 손길이나,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고, 가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가난의 서러움을 아는 것을..
행여나.. 그 분이 고인이 되셨다면 제가 막막한 그 생의  한가운데서 아저씨 말씀 몇 마디로 큰 위안을 얻었고, 맛있다고 하시던 말씀,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가져다 주시던 그 고마운 마음에 크게 감사했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올 한해가 가는 마지막 달력 그 끄트머리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삶에 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잘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한 해를 닫는다.

* 너무나 오랫동안 콩나물국밥일지를 쓰지 못했던 것은, 내 가슴은 사막 같았기 때문에 눈 앞이 혼돈하고 가슴은 황량했으며 길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가장 살아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와 이렇게 글을 쓸 때임을!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_인도의 오랜 경전 '아슈타바크라기타'




(저는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와 아들둘을 키우고, 이런저런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다, 지금은 콩나물국밥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창생 밴드에 이런 글을 연재했었는데,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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