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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샘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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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움 Feb 06. 2023

씀바귀

초여름의 하얀 옷

 

씀바귀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우리에게 항상 하신 말씀이 있다. 자연을 느껴야 한다고. 너네 나이는 자연이랑 어울리는 나이라고.

 

글을 쓰다 보니 선생님의 얼굴이 선명하다. 선생님의 이목구비뿐 아니라 자주 하고 다시니던 머리 스타일, 그리고 약간 흐트러진 흰머리 한 올 한 올 위치까지, 어제 뭘 먹었는지도 한참 생각해야 하는 내가 십여 년 전 담임 선생님을 떠올린다는 건 그 의미가 분명 남다르다는 것이겠다.


 날 좋은 날이면 선생님은 우리를 학교 바로 뒤편 공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공원에 가는 날이 제일 좋았다. 간단했다. 답답한 교실 천장보다 파랗게 탁 트여 눈길이 닿지 않는 하늘이 좋았다.


 그곳은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관리가 안되어 있어서 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했다. 우리는 어려서 가끔 우리 허리만큼 오는 풀과 마주치기도 했다. 하루는 개구리 알을 보았고, 하루는 하얀 풀꽃을 보았다. 그 꽃의 이름을 맞추는 놀이는 하루종일도 할 수 있었다. 사실 맞출 것도 없이, 정답을 모르는 우리 때문에 그 꽃은 새로운 이름을 얻어야만 했다.


"하얀색 꽃 잎을 가졌으니까 하양이야."

"아냐. 꽃송이 중간이 노란게 계란 같잖아. 얘는 계란꽃이야!"

 

 당사자 생각은 하지도 않고 서로의 작명 실력을 뽐내며 9살 꼬마들은 정자 아래서 침을 튀겼다. 정자 아래 핀 이름 모를 들꽃은 간들간들 바람을 탔다. 우리도 실은 이름 짓기보다 정자 아래 들꽃을 핑계로 그늘 아래 자리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원을 돌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정자 아래 까만 그늘로 너도나도 모여 앉았다. 정자는 거들떠도 안보고 잔잔한 들꽃에 얼굴을 맞대는 우리를 보며 선생님은 다리는 아프지 않냐고 위로 올라오라 하셨다.

 

 바람이 선생님의 머리카락에 매달렸다. 나는 하늘을 보는 선생님을 몰래 바라보았다. 그 잠시는 선생님의 평온한 표정을 볼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내 기억 속 선생님은 활짝 웃는 일이 자주 있진 않으셨다. 그 시절 모든 선생님이 그랬듯 왠지 모를 강인함이 선생님의 주름 곳곳에 고여있었다. 하지만 우리와 공원을 오는 날은 선생님이 힘이 빠져 보이셨다. 힘이 하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힘이 빠진, 그런 편안-한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표정의 선생님을 살며시, 내 딴에는 몰래 바라보았다. 하지만 열띤 들꽃 작명 대회 속에서 내 머리는 혼자 불뚝 올라와 있었다. 바람이 대신 선생님의 얼굴에 마른세수를 시켰다. 선생님은 정말 편안해 보이셨다.


 들꽃의 이름은 결국 우리의 머리수만큼 지어졌고 선생님은 학교로 올라가기 전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점심시간 직전이었고, 나는 우유 급식을 신청했었지만 내 우유는 매일 가방행 열차라 배가 더 고팠다.


 선생님은 우리를 공원 나무 중 하나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이름 모를 풀이 잔뜩 나 있었다. 선생님은 그중 양 옆으로 날카롭게 생긴 잎을 조금 따시고는 "이건 씀바귀야." 하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은 이렇게 꽃이나 나무이름을 알려주시고 그 다음 주가 되면 퀴즈를 내시곤 했다. 나는 머릿속에 낯선 단어를 찰싸닥 소리가 나게 붙였다. 절대 떨어지지 말라고 계속 단어를 되뇌었다.


 씀바귀를 우리에게 작게 뜯어 나눠주시고는 학교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교실에 가기 전 음수대로 가 씀바귀를 씻었다. 학교 음수대의 센 물이 잎을 상하게 할까 조심조심 손으로 닦아주었다. 나무 아래에 외로이 말라 보였던 잎이 물을 머금어 생기가 돋았다. 뚝뚝 물을 흘리며 진녹색의 날카로운 잎사귀가 몸을 흔들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던 건지 빨간 초장이 담긴 그릇을 들고 계셨다. 우리는 "우와! 정말 먹어도 돼요 선생님?" 하며 선생님의 손 위로 까만 머리를 모았다. 선생님은 씀바귀는 무척이나 쓰다고 미리 말씀해주셨다. 쓴 맛이 무서웠던 어린 우리는 너도 나도 씀바귀에 잔뜩 초장을 묻혔다. 씀바귀는 곧 진녹빛 물이 아닌 빨간 초장을 머금었다. 뚝뚝 초장이 떨어지자 재빨리 입으로 넣었다. 초장 덕에 먹을 만했다. 야채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먹는 걸 보기만 하며 "어때? 어때?" 하고 연신 물었다. 선생님은 초장도 묻히지 않고 씀바귀를 그냥 꼭꼭 씹어드셨다. 씀바귀의 씁쓸함에도 선생님의 얼굴은 우릴 보며 다시 한번 편안했다. 씀바귀를 물고 계셨던 선생님은 진녹색 미소를 한껏 머금으셨다. 바라보면 눈이 편안한, 그런 초록의 미소를 띠셨다.


 나는 급식실에 가기 전 씀바귀를 얼른 삼키고 다시 손을 씻었다. 음수대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씻고 꼭지를 잠갔다. 아차, 옷 카라에 묻은 초장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하필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 옷에 튀어버린 초장 두 방울은 튀어도 너무 튀었다. 선생님은 울상인 나를 보며 집에 가서 지우면 된다고 어서 밥을 먹으라며 어깨를 털어주셨다. 원래라면 초장 묻은 카라를 주먹으로 꽉 쥐어 나름대로 얼룩을 가린다고 애썼겠지만, 그 날은 그냥 단추를 한두어 개 풀고 초여름의 바람을 느꼈다. 바람이 간지럽힐 때마다 붉다란 향기가 코 끝에 스쳤다. 초장 냄새는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씀바귀는 그 인적 드문 공원에서 쌉싸름한 잎사귀를 계속 흔들고 있었던 걸까.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그 쓴 맛은 어린 내가 맛본 첫 자연의 맛이었다.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기억나는 붉은 내는 그때의 선생님을 불러온다. 초장 묻은 하얀 옷은 시큼하고, 짰으며, 달큼했다. 선생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여러 맛을 알려주시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초여름의 씀바귀는 분명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쏟던 눈길처럼 편안한 맛이었다. 진녹빛 잎사귀는 오늘도 온몸으로 쓴 바람을 일으켜 그 날의 붉은 내를 맡게 한다.


 안녕, 그리운 내 아홉 살의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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