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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27. 2022

여전히 코로나 스타일, 홍콩

꿈만 같은 0+3

지난 금요일 실시간으로 정부 컨퍼런스를 모바일폰에 띄워놓고 한 귀로 흘려듣다가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드디어, 홍콩 입국 방역 조치가 완화됐다!!! 카더라 찌라시로 그룹 챗에서 돌던 "0+3"으로 확정된 것이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홍콩에 사는 외국인 그룹 챗에는 난생처음 티비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컨퍼런스를 시청하는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갈 항공권을 예약하려는데 항공사 홈페이지가 다운이 됐다며 대안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두 개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봤는데, 한 곳은 아예 다운이었고 다른 곳은 1시간 이상 기다려야 접속이 가능하다는 안내 페이지가 떴었다.


컨퍼런스 전날까지도 0+3은 커뮤니티마다 가장 핫한 소문이었고, 대화는 매일 비슷한 패턴으로 끝을 맺었다. "우린 너무 많이 속았어. 이젠 이런 뉴스 봐도 믿을 수가 없어."라든가 "난 홍콩 공식 코로나 홈페이지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 이번에도 또 실망하면 정말 여길 떠나고 싶어 질 테니까."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이 언론사에서 일하는데, 이번에는 진짜래."라는 말에 겉으로는 검증 안된 카더라는 거를 거라고 쿨하게 말하고도 속으로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보긴 했다. 다행히 이번엔 진짜였다.


이제 호텔 격리는 끝이다. 입국 전 PCR테스트는 자가 RAT로 대체 가능하고, 입국 후 PCR을 몇 번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감당할만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돈을 내고 방에 자발적으로 갇혀있는 호텔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비싼 돈 내고 일주일이나 머물면서 침대 시트도 내가 갈아야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던 날들이 이젠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니. 원래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지만 3년 정도 빗장 걸어 둔 곳에 살았더니 이 변화가 신세계처럼 느껴진다.


홍콩이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라며 들떠서 여행사 홈페이지 들락날락한 지 며칠이 지난 오늘, 아이들 유치원에선 생일 파티가 있었다. 들고 갔던 파티 백을 빵빵하게 채운채로 돌아왔다.


"오늘 너무너무 즐거웠겠다! 선물도 많이 받았구나! 엄마가 파티 백 구경 좀 하자!"


가방을 열었는데 가장 큰 선물이 RAT 테스트 키트 모음이었다. 웃픈 현실을 이렇게 일깨워주는구나. "선생님이 nose test 하는 거 많이 줬어!" 라는데 아이들이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슬프다. 이걸 유치원에서 선물로 주는 홍콩의 실상이,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바람에 들뜬 마음이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건강 상태 기록 카드
학교 앱에 사진과 체온을 매일 마감 시간 이전에 업로드한다.

만 2세, 만 3세 아이들인데 매일 등교하기 전에 RAT테스트를 하고 그 결과와 체온을 카드에 적어서 들고 가거나 학교 앱에 음성 결과 사진을 올려야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앉아 있는 것도 안타까운데, 매일 아침 코를 쑤셔야 한다니. 일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너무나 안쓰럽다. 곰돌이가 아프다며 인형에도 마스크를 씌우는 아이들이라니...


아직도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홍콩이지만 이번 격리 조치 완화가 일상을 다시 불러오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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