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에 초등학교 인터뷰 클래스, 나보다 바쁜 유치원생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홍콩
첫째가 다니던 오후 로컬 사립 유치원에 올해부터는 둘째도 다니게 됐다. 우리가 작년에도 그랬듯, 이 "유치원 입시"를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붙었다. 지난 1년간 언니를 배웅할 때마다 자기도 교실에 가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쌓아놓은 그녀만의 명성이 있었던 것 같다. 부모가 함께 하는 처음 이틀간의 클래스 내내 교실이며 복도며 돌아다닐 때마다 누군가 둘째에게 아는 척, 인사를 건네는 걸 보니.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K1 교실은 익숙했다. 아직도 첫째를 보내면서 겪었던 문화 충격이 생생하게 기억나기에, 이번에는 나의 비루한 광둥어가 걱정되지 않았다. 역시나, 이틀 간의 액티비티는 작년과 거의 비슷했다. 나름 짬밥이 쌓인 엄마라고, 그리 긴장하지도 않고 작년에 안면을 튼 엄마 M과 함께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둘째도 올해 같은 반에 배정되었기에 우린 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로컬 유치원들을 전전했던 경험에 의하면, 여기 엄마들은 참 차갑다. 엄마들 대부분이 서로의 아이를 경쟁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정보 공유를 잘 안 한다. 물론 이건 K1 시작 전 PN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초등학교 입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보니 K2가 되면서는 더 심해진 것이 실제로 와닿는다. 심지어 애들 픽업할 때 눈을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하는 엄마들이 많다. 누구인지는 서로 다 알지만 말이다.
작년에 첫째를 처음 이곳에 보내면서, 혼자만 외국인이어서 적응을 못 할까, 외모부터 약간 다르니 그것을 이유로 반 아이들이 친구 하기 싫어할까 걱정을 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엄마들 그룹챗에서 열심히 플레이데이트를 할 친구들을 찾곤 했었는데, 주기적으로 학교 친구들과 놀게 하려던 나의 계획은 곧 무산되었다. 겨우 서너 명 모아서 놀려고 한 것인데도, 함께 모일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 3살인 유치원생들은 유치원 이외에도 과학, 수학, 영어, 만다린, 발레, 체조, 스케이트, 테니스, 수영 등 다양한 클래스에 가느라 심지어 일요일까지 스케줄이 없는 날이 없었다. 결국 함께 모여 놀 수 있었던 것은 일 년간 두세 번이 전부였으니, 올해 둘째 반 엄마들 그룹챗에서 나는 플레이데이트를 하자는 말은 아예 꺼내지 않고 있다. 함께 놀 시간이 있는 친구는 결국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M은 전날 다녀왔다며 한 명문 초등학교의 입시 설명회에서 들은 내용을 소곤소곤 알려줬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어느 학원 어느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우는지, 또는 입시 설명회에서 무엇을 들었는지 공유하지 않지만, 그녀는 달랐다. 아무래도 우리 부부가 둘 다 홍콩인이 아니니까 이미 입시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걸 알기에 딱히 견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초등학교는 전체 학생의 70퍼센트 정도가 그 학교 졸업생의 자녀들이고, 다른 5퍼센트는 각 유치원 교장들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 그리고 나머지 25퍼센트가 일반 전형이라고 한다. 1년에 150명을 뽑는데, 그중 25퍼센트라니, 40명도 채 안 되는 자리를 두고 몇 천명이 경쟁을 할 것을 생각하면, 엄마들이 왜 이리 비밀 작전을 공수하며 입시를 준비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M이 곧이어 아이들의 인터뷰 클래스에 관심이 있냐며 물었다. 그룹으로 함께 모아서 선생님을 고용하면 현재 있는 클래스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 한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나. 예전에 시간당 600 HKD( 약 10만 원)을 내고 만 2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명문 유치원 입시를 준비하는 인터뷰 클래스에 아이를 보냈던 지인이 이야기해 줘서 기함한 적이 있는데, 3살에도 역시 인터뷰 클래스가 핫이슈였다. 애들 학교에 잘 보내는 선생님들 이름 리스트가 있나 보다. M 또한 서너 명의 선생님들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의 클래스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했다. 나의 뜨뜻 미지근한 반응에 그녀는 혹시 다음 학기쯤 생각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로 오늘의 입시 토크를 마무리 지었다.
인터뷰라... 2, 3살 아기들 사이에서 무엇을 가려볼 수 있기에 인터뷰라는 것을 하는지, 국제학교에서 초등교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아이들을 놀게 하고 그걸 관찰하다 보면 각각의 성향이 보인다고, 학교에서 그 아이가 어떻게 perform 할지 예측은 가능하다고 했었다.
인터뷰 클래스에서 그 예측을 뒤집어엎을 비결이라도 배우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인터뷰 클래스 선생님들의 홈페이지엔 원하던 초등학교에 합격했다며 학부모들이 남긴 장문의 후기들이 넘친다. 그 아이들은 정말 인터뷰 클래스에서 무언가를 배웠기에 그 학교에 합격한 것일까? 아니면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이 마침 지원한 학교에서 선호하는 성향이어서) 인터뷰 클래스와는 상관없이 합격할 아이들이 합격한 것일까? 누구도 답을 모르는 것 같은 이 초등 입시 전쟁에서 홍콩의 엄마들은 오늘도 최고의 인터뷰 클래스 튜터를 찾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