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졌다. 홍콩에서 타이거맘이 되는 길로 엑셀 밟고 가는 듯하다가 결국 오늘부로 급정지해버렸다.
2021년 9월 남편과 내가 아이의 주요 언어로 프랑스어 대신 광둥어를 선택했고, 만 두 살 반까지 광둥어 노출이 전무했던 우리 집 첫째 A1의 광둥어 언어 인풋을 늘리기 위해 유치원을 하루에 두 번 보내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두 번 보내는 것은 내가 생각해 낸 비결은 아니고, 아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니 지인이 추천했던 방법이다. 실제로 홍콩 엄마들은 그렇게 두 군데로 보내는 엄마들이 많고, 한국인 엄마들도 종종 있다.
A1의 만 두 살 반 때 스케줄 - 오전에 집 근처 국제 유치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점심 먹고 교복을 갈아입고. 오후에는 집에서 지하철 1 정거장 거리의 로컬 유치원에 갔다. 오후 PN반 선생님은 두 명인데 어린이가 단 4명이어서 밀착 케어로 선생님과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아이의 광둥어가 빨리 늘었다. 아이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8월 중순이었고, 그땐 선생님이 광둥어로 말을 한 다음에 영어로 다시 설명해 준다고 했다. 아이가 겨울 유니폼을 사야 할 무렵 - 11월 초 - 에 선생님은 아이에게 영어로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없다고 했고, 아이가 광둥어를 문장으로 말하는 것도 이쯤 시작됐다. 또래 홍콩 아이들과 비슷하게 말을 하는데 반년도 걸리지 않다니, 우리 부부는 "역시 아이들은 스펀지 같아!" 라며 감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오후 반에 아이들이 4명밖에 없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둘째 A2도 만 두 살이 되었을 때 같은 로컬 유치원의 PN반에 보냈는데 그때는 정원 30명이 꽉 찬 반이라 선생님과 상호작용 기회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A2는 그 유치원을 1년을 꼬박 채워서 다녔으나 지금도 광둥어로 완전한 문장 발화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건 둘째와 첫째의 근본적인 언어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그 후 남편의 홍콩 출신 직장 동료들이 추천해 준 유치원 세 군데에 K1학년(만 3살)으로 지원을 해보았다. 그 세 유치원 중 한 곳은 3차 면접까지 있는 곳이었는데 2차에 초대되지 않았고, 다른 두 유치원에서는 1차 면접이 끝이었는데, 둘 중에 한 곳에서는 대기 명단에 올라갔고, 한 곳은 합격했다.
거긴 지하철을 30분 정도 타고 가야 하고, 내려서는 또 10분 넘게 걸어가야 했다. 2022년 9월부터 첫째가 1년간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했다. 올해엔 둘째도 함께 입학했으니 학교 근처로 이사를 계획했고, 같은 동네에 있는 다른 유치원 오전반에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는 무산되었고, 아이들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유치원 두 군데를 매일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9월 둘째 주. 개학을 해서 막상 통학을 해보니, 내 예상을 뛰어넘는 난국이었다. 6시 30분에 일어나서 대충 아침을 먹고, 7시 30분엔 집에서 출발해서 지하철을 탔으며, 어른들의 출근 시간이라 애들은 앉을자리가 없어 내 발 위에 주저앉았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유치원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은 재래시장을 가로질러야 했는데 때마침 아침 시간이라 북새통이었다. 야채, 과일, 고기를 내리는 트럭이 여기저기 정차해 있고, 박스들은 길 위에 널브러져 있고. 반쯤은 졸고 있는 아이 둘을 그 사이사이로 데리고 유치원에 도착하면 8시 35분.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 다행이었던 날, 졸려운 둘째는 아침 통학길에 밀려오는 잠을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학교 근처 맥도날드에서 오렌지주스를 샀는데 아이는 이렇게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여럿 이렇게 쪽잠을 자는 것을 보니 씁쓸했다.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고 11시 50분에 다시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픽업했다. 오후 유치원은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물론 그 사이에 쇼핑몰에 데려가서 헬퍼가 싸 온 도시락으로 밥을 먹이고, 옷과 신발, 그리고 책가방을 바꿔야 한다. 오후 유치원에 아이들이 들어가는 시간은 12시 50분. 시곗바늘을 볼 때마다 나의 스트레스는 두 배로 늘었다.
오후 4시에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에 데리고 오면 5시가 조금 넘는다. 그럼 그때 나는 아이들 저녁 요리를 하고, 헬퍼는 아이들을 씻겼다. 아이들이 씻고 나와 저녁밥을 먹으면 어느새 6시 반.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7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숙제가 남아있었다. 이제 숙제는 언제 하나. 결국 아침 유치원 숙제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았고, 오후 유치원 숙제만 겨우 마쳤다. 이러다간 유치원 두 군데에서 전부 최하점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개학을 하고 다녀온 첫날, 나는 외국에 출장 중인 남편에게 불평 문자 폭탄을 보냈다.
"이 스케줄로 애들 계속 보낼 거면 내게 기사 딸린 밴을 한 대 보내줘. 이건 차 없이 불가능한 스케줄이야."
내 심사가 꼬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의 대답은 내 오기를 더 돋궜다.
"그래. 난 너의 판단을 믿어. 네가 그렇다면 불가능한 거겠지. 그럼 바로 아침 유치원을 끊어."
나중에 아이가 초등 입학 인터뷰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몰랐다.
"그러게, 그때 힘들더라도 애들한테 충분한 시간의 중국어 노출 환경을 유지해줬어야 했어."
그 말을 듣기 싫어서 나는 오기를 부렸고, 헬퍼와 일주일 극기 훈련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후회 섞인 말을 듣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라고 할 정도로 선생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고, 어른도 피곤할 수밖에 없는 스케줄로 일주일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유치원도 계속 다니고 싶다고 조른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건강에 영향이 갈까부터 걱정하는 걸 보니, 나는 타이거맘이 될 재목은 아니다.
예전에 홍콩 엄마들을 만났을 때 애들 유치원을 두 군데 보낸다고 했더니 어떤 엄마가 그랬다.
"Oh, so you are one of those mums."
one of those mums. 나도 작년엔 그중 하나였지. 이젠 그 타이틀도 바이바이.
지금도 그 엄마들은 아이들을 오전 오후 유치원 사이사이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 아침 유치원을 그만둘까 하다가도 금방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던 건, 그렇게 하는 다른 엄마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 유치원에 갔던 첫날, 거기서 오후 유치원에서 A1과 같은 반인 남자아이를 만났다. 그 엄마 R은 우리에게 기쁘게 아는 척을 했는데,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쁘다기 보단 걱정이 됐다.
'엄마 아빠가 홍콩인, 대륙인이라 광둥어와 만다린을 둘 다 잘하는 그런 아이인데도 중국어 더 하겠다고 아침 유치원엘 오다니! 그럼 이거 그만두고 하루에 3시간만 중국어를 쓰게 될 우리 애들은 어쩌지?'
그래도, 그래도, 안 되겠다. 도저히 애들을 이런 스케줄로 통학시킬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언어 때문에 걱정은 되지만, 당분간은 그냥 늦잠도 자고 아침마다 놀고 싶은 대로 놀게 둬야지. 제대로 타이거맘이 되지 못한 나의 조바심이 언제 다시 고개를 쳐들지는 모를 일이지만. 언어는 장기전이니까. 이제 쉬엄쉬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