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게 붙잡혀 있던 내 날개옷. 오늘과 꼭 같은 날짜인 작년 3월 10일에 그걸 돌려받았다.
홍콩이 하늘길을 열면서 승무원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런던을 떠나올 때만 해도, 육아 휴직이 끝나면 홍콩 베이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복귀하고 보니, 참으로 이상하게도 회사에서는 내부 트랜스퍼가 불가능하단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난 일 년간 런던과 홍콩을 미친 듯 왕복하며 살았다.
동네 외국인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서로 소개를 하다 보면 출퇴근을 어디로 하는지 묻는 사람이 많다. 특히 좁은 홍콩 특성상 긴 시간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구룡에 살지만 회사는 홍콩섬이라고 하면 "어머~ 힘들겠다."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만난 엄마 한 명이 내게 묻기에 런던으로 다닌다 하니, 그 엄마는 내게 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동문서답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나중에 정말로 런던으로 출퇴근을 한다고 하니 너무 신기해서 이젠 나를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풀타임 승무원으로 내가 한 달에 받는 비행은 약 110-125 시간이다. 런던 - 홍콩, 홍콩 - 런던 이렇게 장거리 비행에서만 일하니까 한 달에 보통 왕복 4번이다. 그리고 왕복 비행 한 번은 4일 패턴이다. 예를 들어 1일에 런던을 출발하면 2일에 홍콩에 도착한다. 그럼 집에 가서 씻고 사람다워진 후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준다. 같이 저녁 먹고 잠자고, 그러면 벌써 3일. 3일 아침부터 빨래를 하고 아이들 유치원 가기 전에 책 읽어 주고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간다. 3일 밤에 비행이므로 집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지 못하고 브리핑 시간 전에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3일 밤에 홍콩을 떠나면 4일 아침에 런던에 도착한다. 그렇게 4일의 왕복 여정을 끝내고 나면 대부분 3일간의 쉬는 날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4일 여정의 반복. 나는 동료들과 스케줄을 바꿔서 3일간의 휴일을 2일간이나 1일간 쉬는 것으로 바꾼다. 그렇게 비행을 몰다보면 월초든 월말이든 일주일 정도 쉬는 날이 모이게 되는데 그때 나는 승객으로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가서 지내다가 그다음 비행 시작 전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쉬는 날 자비로 홍콩을 왕복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평균 5번 런던과 홍콩을 왕복한다. 이제는 내 몸은 홍콩 시간도 아니고, 런던 시간도 아닌, 중동 언저리쯤 되는 시간대를 따르는 것 같다. 그래서 런던에선 초저녁에 자고 새벽부터 깨어있고, 홍콩에 가면 애들 재우고 나와서 넷플릭스도 보며 여유를 부리다가 늦게 자고 또 늦은 아침에 일어난다. 그렇게 내 몸은 런던 집이 집인 것도 아니고, 홍콩 집이 집인 것도 아닌 그런 상황이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고 있다.
처음엔 출퇴근할 때 승객으로 비행기에 타는 것이 여전히 설레는 일이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일할 때 타는 비행기와는 다르니까. 행선지는 매번 런던 아니면 홍콩이지만, 그래도 비행기 이륙하기 전의 그 두근거림이 좋았다. 꼬박 일 년을 이렇게 하고 보니 이젠 비행기가 고속버스 같아졌는데,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이제 어디서 그 두근거림을 찾으란 말인가.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낮다), 다른 외항사 승무원들처럼 이 나라 저 나라 세계 여행을 하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물론 내 돈 주고 휴가를 갈 수는 있지만, 원래 승무원이란 직업의 매력 중 하나는 돈 벌면서 하는 여행이니까) 나는 왜 이 일을 아직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이 직업에서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번 비행할 때마다 생각해보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만석인 비행에 지쳐서 생각할 시간이고 뭐고 없이 끝나면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유치원생 어린이가 둘 딸린 41세 아줌마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매달 지구를 평균 두 바퀴씩 도는 걸 꼬박 일 년이나 해 놓고도 나는 아직 내 길을 찾지 못했다. 이 와중에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달부터는 파트타임으로 전환이 됐다는 사실이다. 한 달에 2주는 쉬고 2주는 일하는 시스템이다. 한 달에 두 번만 홍콩을 왕복하면 되니 나쁘지 않다. 집에서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2주라는 시간은 월급의 반토막보다 더 큰 가치가 있으니까.
갑작스럽게 복귀하게 되어 풀타임 비행을 소화하느라 코로나 내내 해오던 한국어 수업을 중단했는데, 다시 수업을 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겠다. 결국 나의 출퇴근은 일 년으로 끝을 맺지 못하는구나. 얼마나 더 장거리 비행으로 출퇴근하는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내 몸도 정신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할 만큼 비행기에서 보낸 긴 시간, 다시 그렇게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기에, 오늘이라는 날을 나름 기념하고자 끄적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