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 씨는 강원도 속초에 살고 있다. 엄마의 잠이 안 좋아진 지 벌써 한 달 째. 잠잠하던 허리 협착증이 고개를 들면서 잠도 같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갈수록 몸이 야위어 갔고 피부색도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지윤 씨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새벽녘에 일어났다. 그 때 엄마는 시장 한켠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 중이셨다. 사업실패 후 집에 계신 아빠와 자식 셋을 뒤로 하고 씩씩하게 새벽길을 나섰다. 엄마가 일 나간 후 지윤 씨는 엄마가 끓여 놓고 간 김치찌개로 어린 동생들과 아빠를 챙겼다.
1985년 어느 가을, 지윤 씨의 6세 동생 희수는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근처 외삼촌 집에 혼자 놀러가던 동생은 길을 건너다 그만 차 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동생을 엄마는 평생 가슴에 묻으셨다. 먹고 사느라 동생을 챙기지 못한 엄마는 ‘아이고 불쌍해, 아이고 불쌍해. 다 내 탓이다.’를 수만 번 가슴으로 외치셨다. 그 당시 스스로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한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으셨다. 엄마는 요즘 들어 희수 꿈을 자주 꾼다. 그런 날은 엄마의 표정이 슬프다. 한동안 잠잠했는데 나이 드셔서 희수 생각이 더 드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지윤 씨는 눈이 침침한 엄마를 대신해 하루일과와 수면상태를 자세히 기록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지윤 씨는 구불구불 곡선 진 2차선 도로를 운전해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사는 집은 멀리 바다가 보이는 검은색 기와가 있는 작은 주택이다. 단층이지만 앞마당에 장독대도 있고 매실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윤 씨는 이 마당에서 줄넘기도 하고 공기놀이를 하면서 놀았었다. 외풍도 심하고 주택이라 불편해서 아파트로 옮기자고 여러 번 설득했건만 엄마는 이 집이 좋다고 하셨다. 분식집을 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좋아진 후 구입한 집이어서 인지 엄마에겐 더 애틋한가 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는 소파에 힘없이 누워계셨다. ‘엄마, 많이 피곤해? 그만 누워있자. 이렇게 낮에 누워있으면 밤에 또 잠 못 자게 되니 어서 일어나’ 지윤 씨는 축 늘어져 있는 엄마를 일으켜 세워본다. 지윤 씨는 집에서 가지고 온 색칠하기 책과 연산문제집을 엄마에게 내밀며 ‘엄마 이제부터 이거 낮에 공부하자. TV 보는 것 대신 연산문제집도 풀고 색칠하기도 해봐. 낮에 뇌를 써야 밤에 체온이 내려가서 잠이 온다잖아.’‘
지윤 씨의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보살피며 속초와 서울을 오가길 8주째.
지윤 씨 : 선생님, 우리 엄마 치료 잘 이끌어 주시고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치료자 : 다 지윤 씨 덕분 이예요. 그간 어머니 모시고 먼 길 왔다 갔다 하느라 애쓰셨어요, 어머님도 애써주셨고 옆에서 지윤 씨기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주셔서 치료가 잘 마무리되었어요. 감사드리고 조심히 내려가세요.
수면센터 로비에서 자잘한 노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기다리던 지윤 씨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불면증 치료를 종결하는 날,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지윤 씨 어머니, 어려운 여건에도 묵묵히 삶의 여정을 걸어오신 어머니를 가슴으로 꽉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