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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근 Jul 29. 2020

어머님 말씀_"늙음은 어디서 오는지"

치매이신 어머님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떠나지 않습니다

한 달 전 고향인 제주를 다녀왔다. 치매이신 어머님이 다리를 다치셔서 깁스했다. 어머님을 케어하시는 아버님의 힘든 목소리에 떨어져 사는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목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토요일 아침 올라왔다. 요금이 제일 싼 요일,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나도 살아야 하고, 부모님 손자도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그 건 핑계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보다는 내 손에 쥔 돈이 더 소중해 보였을거다. 바보처럼...


예상대로 어머님은 안 좋으시고 케어하시는 아버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분이 살아계시는 동안 행복한 기억만 생각하시기를 기도드릴 뿐이다.


어머님의 기억은 어느 시점 한순간에 머물러 계신다. 내게 '몇 살이냐?'고 물어보고 '쉰여섯'이라고 대답하면 놀라신다. '어머, 벌써?' 하시곤 5분 만에 잊어버리시고 다시 내게 물어본다. '이제  살이고?' 잠드시기 전까지 반복된다. 이런 대화 중에 어머님이 혼잣말하신다. '아이고, 늙음은 어디서 오는지, 쯧쯧, 빨리 가야 하는데...'



어머님의 혼잣말을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책과 노래가 있다. 쉘 실버번스타인(Shel Silvertein)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라는 책과 가수 김진호가 부른 '가족사진'이란 노래다.

오래전에 한 나무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을 사랑한 나무는 소년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어른이 된 소년이 돈이 필요하자 나무는 열매를 주었고, 집이 필요하자 가지를, 여행할 배가 필요하자 나무 몸통을 주었다. 남은 건 나무 밑둥 뿐. 한동안 찾아오지 않던 소년이 노인이 되어 왔다. 노인은 말한다.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쉬고 싶어". 나무는 쉬고 싶은 노인에게 밑둥을 쉬라고 내어준다. 나무는 행복했다. 

가족사진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생명 있는 모든 것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간다. 하루살이도 그렇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그렇다. 하지만 부모님의 늙음은 자식들의 젊음과 맞바꾼다. 그 시간 동안 아픔과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자식들은 자기 삶을 사느라 정신없다. 자식들은 잠시만, 잠시만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식도 늙은 부모가 되어버린다. 하늘을 보며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들어 줄 부모님이 안 계신다.


아마도 이 글은 끝이 없을 것 같다. 내 삶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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