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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Apr 01. 2020

대한민국 어느 판사의 서재 구경   

문유석의 <독서 쾌락> 

어쩌다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을 하게 되면 나는 항상 서재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이 사람의 관심사가 어디인가 또는 취향은 어떤지 약간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서 빌려 보는 것은 덤이고. 방송이나 기사를 통해 지식인의 서재를 구경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수준 높은 고전문학이나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교양서적들을 볼 때가 많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같은. 문유석 판사의 <쾌락 독서>에서도 대한민국 판사의 서재를 구경할 수 있다. 그의 서재 분위기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지식인의 골방보다는 형형색색의 장식으로 꾸며진 키즈카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프카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는 거냐며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된다고 일갈했지만, 수사법은 수사법일 뿐, 책은 도끼일 수도 있고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고 잠을 재워주는 수면제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개인주의자 선언> 이란 책을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판사의 글인가 싶을 정도로 글솜씨가 빼어났고 진보적이면서 유연한 글들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대본을 썼다고 하는 뉴스를 봤다. 이 판사님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하고 있었는데 정답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독서량과 넓은 스펙트럼. 황미나 작가의 만화부터 하루키까지. 편식 없는 독서가 바로 좋은 글이라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책은 구조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삶의 행복과 불행은 책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책도 무력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책 보다 크다.


예전에 아주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에게 위로한답시고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그 책을 통해 치유를 했다고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책 선물을 한 건 단지 내 마음만 편하려고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책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었나? 저자는 책은 땅콩일 수도 있다지만 그의 글들은 도끼 같을 때가 더 많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받은 대로, 조직 논리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의 실체였다. 흑인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면 병균에 감염된다고 진심으로 믿은 미국 남부의 숙녀들, 유대인을 가스실에 보내는 일이 맡은 바 행정절차일 뿐이라고 믿은 독일 공무원들, 미국 한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호남 사람들은 다 뭐가 어떻고 저떻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킬킬대며 지껄이는 사람들, 여자의 '노'는 '예스'니까 남자가 좀 터프하게 밀어붙여야 된다고 믿는 남자들.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저자가 판사직을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대 대한민국 판사의 위치면 기득권 중에 기득권이고 권력의 더 높은 곳을 향해 갈 수도 있는 위치일 텐데 참 멍청하다는 생각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멋진 글을 쓸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배가 아프다.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좋은 풍경을 즐기고, 이국적인 음식도 맛보면서 얼마나 더 좋은 글을 쓰는지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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