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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Dec 14. 2023

콩알 심장이 뉴욕에 가면 생기는 일

대체 어쩌자고 미국까지 왔을까


내겐 너무 버거운 뉴욕
episode.1


곧 착륙 예정이니 안전벨트를 메달라는 방송이 기내에 흘러나온다. 창문을 활짝 여니 새파란 하늘 아래 빌딩으로 빼곡한 맨해튼 시내가 보인다. 가장 높게 솟아있는 저 건물은 아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리라. 동생 어깨를 툭툭치고 창밖을 보라며 호들갑을 떤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14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에 도착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서 내린다. 존. F. 케네디 공항에서는 낯설고 오묘한 냄새가 난다. 시야에 들어오는 글자는 온통 영어 투성이다. "우리 진짜 뉴욕에 왔어!"



빠르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입국심사 줄을 기다린다. 배는 고픈데 2시간 가까이 서있느라 고생 좀 했다. 악명 높은 입국심사는 잔뜩 쫄았지만 여차저차 잘 대답했다. 후련하게 심사를 끝내고 짐을 찾은 뒤 공항철도를 타러 이동한다. 가는 방법을 미리 실컷 찾아두었더니 우리가 내린 터미널은 다른 곳이라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도 친절한 안내 직원 분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공항철도를 탔다. 창밖 너머 옹기종기 귀여운 가정집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에는 설렘과 떨림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다. 얼마 뒤 환승역 Jamaica역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시내로 가는 지하철로 갈아타면 드디어 숙소다!


구글지도를 확인하니 타야 하는 파란색 노선은 5분 뒤에 도착한단다. 그런데 한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무역 센터 방면이면 똑같이 시내로 가는 열차인 것 같아 급하게 올라탔다. 운 좋게 자리도 앉아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는데 아뿔싸, 모니터를 확인하니 우리가 내릴 역에 정차하지 않는 열차였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하나의 플랫폼에 여러 개의 노선이 지나간다. 즉 같은 노선에 1호선과 2호선이 한꺼번에 지나가기에 방향만 맞다고 무작정 타서는 안된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잘못 탔다. 당황한 나머지 일단 다음역에서 서둘러 내렸다.


용감한 동생이 찍은 문제의 'Jamaica-Van Wyck' 역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려 주변을 돌아보니 열차가 떠난 지하철역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에 소름이 끼쳤다. 벤치에 앉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한 남자는 마리화나를 피우는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제야 공항 주변 치안이 좋지 않아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친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다음 열차는 10분 뒤에나 도착한단다.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동생은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아무리 평소에 겁이 많다지만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생애 가장 길었던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맞는 열차를 탔다. 눈을 질끈 감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별 것도 아닌데 이렇게 겁먹는 쫄보가 대체 어쩌자고 미국까지 왔을까.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쭉 빠졌다.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니 어느덧 타임스퀘어 근처에 도착했다. 작동하는 게 신기할 지경인 낡아 빠진 철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구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에 잠시 벙쪘다. 동생을 바라보니 나처럼 얼이 빠진 표정이다. "뭐야, 여기 영화 세트장 아니야..?"


출퇴근길 매일 가로지르던 강남의 빽빽한 빌딩숲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함이다. 건물은 어찌나 높은지, 고개를 내내 들고 구경하느라 목이 아플 지경이다. 거리에 63 빌딩이 연달아 몇 백채가 서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건너편에 보이는 미국 대표 신문사 뉴욕 타임스 건물은 몇 층인지 가늠조차 안된다. 애플 전광판 광고와 불쑥 나타나 코끝을 스치는 마리화나 냄새를 가로지른다. 10초에 한 번씩 경찰차 사이렌이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뉴욕이 맞다.



뉴욕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마냥 좋다기보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모든 면에서 상상하던 모습 그 이상이었다. 많은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서울이 정말 큰 도시임을 실감했는데, 뉴욕은 어떤 도시와도 비교 불가능했다. 사람부터 건물, 자동차 등 거리를 빈틈없이 채운 요소들이 목소리를 한데 높여 역동적인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이런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니, 어쩐지 묘하게 배신감이 들었다. 복합적인 감정을 형용할 아무런 단어도 찾지 못하고 압도되어 걷다 보니 어느덧 숙소 앞이다.


오랜만에 실전으로 부딪히는 영어 회화에 조금 버벅거렸으나 무난하게 체크인을 하고 객실 키를 받았다. 그런데 웬걸, 객실로 올라가 문을 여니 한 캐리어가 보인다. 들어가도 되는 건지 머뭇머뭇하던 중에 방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오 마이 갓, 직원이 방을 잘못 알려 준 모양이다. 급하게 사과를 하고 프런트로 달려가니 미안하다며 다시 방을 배정해 준다. 캐리어도 무거운데 대체 왜 이런 고생을 시키는 건지!


분노를 삭이고 새로운 방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다. 생각보다 넓고 깨끗해서 머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 이미 공항에서부터 잔뜩 긴장한 터라 당장이라도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지만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며칠간 쭉 비 예보가 있기에 화창한 오늘을 즐겨야 한다. 보조 가방 하나만 가볍게 매고 밖으로 나섰다.



뉴욕에서의 첫끼는 대망의 파이브가이즈다. 얼마 전 한국에도 강남에 첫 지점이 오픈했지만 몇 시간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 현지에서 먹는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라니, 오히려 좋다! 햄버거 2개에 감자튀김 하나, 그리고 밀크셰이크와 초코셰이크를 포장하고 브라이언트 파크로 걸어간다. 풍성한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셰이크를 한입 마셔보니 눈이 번쩍 뜨인다. 달짝지근하니 완전 미국 맛.


평일 점심시간이 지난 애매한 시간임에도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커피를 한잔씩 들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 양복을 입고 일자로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의자에 다리를 쭉 펴고 책을 읽는 사람, 둥그렇게 모여 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까지. 돗자리도 없이 풀썩 앉아 각자만의 방식으로 오후를 즐기고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햄버거를 먹으며 광합성을 했다. 음식 부스러기에 모여드는 비둘기를 쫓느라 성가시긴 했지만 말이다. 밥을 다 먹고 동생은 공원 감성을 즐기겠다며 냅다 잔디에 누워버린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인 나와 달리 느긋하고 태평하기만 한 동생이 부럽기도 하다.


해가 지지 않은 낮부터 해 질 녘 노을부터 밤까지의 맨해튼 야경


늦은 점심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야경을 보러 갈 시간이다. 록펠러 센터에서 보는 야경이 멋지다고 하여 전망대 티켓을 사전에 구매했기 때문이다. 노을부터 해가 완전히 저문 밤 모습까지 보고자 6시로 예약했다. 눈 깜짝할 새에 70층을 올라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엠파이어 빌딩이 정면에서 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어느덧 붉게 물들어가는 오른편 하늘을 바라본다. 영화나 사진으로 많이 봤음에도 실제로 마주하니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니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일교차가 심한지 옷 사이로 바람이 슝슝 들어와 으슬으슬 춥다. 점점 다리도 아파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빽빽한 인파를 뚫고 밖으로 나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얼굴보다 큰 조각 피자와 음료수를 사서 돌아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고 푹 충전할 예정이다.

 


이 도시를 온전히 즐기기에 나는 너무 겁이 많다.


9박 10일의 일정동안 과연 무탈히 잘 지낼 수 있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도시의 에너지에 기가 빨려버린 첫날이다.


잠들기 전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내일은,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은 넣어두고 이 도시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해 주세요.




TODAY's BGM

Mild High Club - Homage

https://youtu.be/oRGDhgITetc?si=m2JnXs1f6Ru6gA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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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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