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을 읽고..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이 정도 조건의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여 결혼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라는 이유로 결혼을 결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조건이든 사랑이든 이유가 어찌 되었건 결국 결혼은 서로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해서 무언가를 선택하지 불행해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선택 이후에 누군가는 더 불행해지기도 한다. 남들 다 하는 것인데 왜 너만 못(안)하는 것인지 따지거나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당신도 해야 한다고 강요받을 때 그로 인한 갈등이 불행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며느리로서 MZ세대의 며느리로서 A급도 아니고 B급은 어떤 며느리인 걸까 하는 의아함에 집어든 책,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은 고부갈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이런 글이 나온다.
결혼은 개인의 특별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 있다고 해도 내가 선택한 사람이 못 견뎌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할 수 없다. (132p)
요즘은 부캐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지금 사무실의 내 옆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일을 하는 이가 퇴근을 하면 무뚝뚝함을 던지고 누구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수도 있는 세상인 것이다. 하나의 나지만 다양한 내가 될 수 있는 세상. 그러나 부캐가 본캐를 위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모습도 나고 저 모습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 역시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결혼을 하는 순간 며느리라는 부캐가 생기는 것과 동시에 부캐가 본캐 자리를 위협한다. 요리를 전혀 못하지만 며느리는 요리를 잘해야 하고 전화보다 문자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며느리는 시부모님에게 안부전화를 늘 드려야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길 원하는 사람이지만 며느리는 일이 아니라 남편을 혹은 자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남편마저도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너만 변하면(혹은 참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이것이 과연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나로 인해 혹은 나와 관계된 누군가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그저 그에게 참고 넘기라고만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부캐로 인해 본캐를 잃어버리는 것이 결혼이라면 남녀를 떠나 어느 누구도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내 곁에 누군가가 그것을 못 견뎌한다면 '남들 다 하는 것이다', '너는 며느리기 때문에 응당 그래야 한다'라는 이유로 강요할 수는 없다. 결혼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이유로 해야만 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누구였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가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고 무엇을 해야 불행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결혼을 하는 남녀가 부모님의 기준이나 사회적 시선들을 1순위로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혹은 남편이 1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아니 요즘 세상에도 이런 시어머니가 있단 말이야?'라며 놀라기도 했었고 '대체 이 남편은 왜 따위로 행동하는 거지?'라며 분노하기도 했고 '맞아 나도 그래!'라며 공감도 할 수 있었던 <슬기로운 B급 며느리 생활>. 이 책에서 나오는 이상한 며느리로 표방되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런 이상한 B급 며느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으로 인한 고부갈등의 이면에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참고 사는 것이 며느리로서의 도리로 치부되었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생각에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 반기를 드는 MZ세대가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거나 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나도 했으니까 너도 그렇게 해!'가 아니라 '나는 그렇게 했지만 너는 이런 생각을 가졌구나'라는 입장을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안일만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참으라고 강요하는 자세를 버리고 과거에는 당연했던 것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갈등이 수그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부갈등은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한 반기와 강요가 아니라 서로 간 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때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기존의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 1순위가 되고 기존의 관습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들이 있음을 인정할 때 가족이라는 이름이 '올무'가 아니라 '울타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