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농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당신 역시 당신의 생각보다는 부모님의 의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들리지 않아서 타인과 소통이 어려운 당신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더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곳에서라면 일반 학교보다는 수월하게 교과 과정에 적응하지 않을까 하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마음들.
당신은 분명 청각장애인 특수학교라고 하여서 당신과 같은 친구들만 모여있는 줄 알았건만 막상 학교에 와보니 이곳은 다양한 친구들이 존재했다. 어떤 친구들은 보청기나 수술을 통해 소리를 듣고 말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들리지 않지만 수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청각장애가 아니라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 한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지만 당신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도대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뿐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찬찬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는 당신의 시야에 친구들의 모습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옆 자리에 앉은 친구는 행여나 못 듣는 부분이 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수어를 사용하는 친구는 아예 수업을 포기한 듯 엎드려 자고 있었고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는 소리를 내거나 종종 당신 곁으로 와서 때리는 장난을 치곤 했다.
한 교실 안에서 누군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음성 언어가 들리고 누군가는 음성 언어가 들리지 않아 수어가 편하고 누군가는 음성 언어도 수어도 모두 어렵고 누군가는 음성으로 설명하되 보다 더 쉬운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오로지 '음성 언어' 하나뿐 이다.
이처럼 농학생들은 청인 학교에서든 농 학교에서든 이도저도 아닌 곳에 서있다. 모든 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교육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땅 위에 청각 장애 유형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은 자신들의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능력에 맞게 교육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교육에 대한 개편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1. 한국수어학교 설립을 통한 청각장애 학생의 교육권 보장
농인이라고 하여 모두가 수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수어는 결국 언어이기에 직접 배워야만 구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어처럼 국민들이 배울 수 있게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길 원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누군가는 배워서 알고 누군가는 배우지 않아서 수어를 모르는 것이다.
만약 한국수어학교가 설립이 된다면 농학생들은 수어교육을 복지 기관을 찾아다니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면서 배워나가는 것과 같이 농인들이 학교에서 수어를 배우고 수어를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나누고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간혹 수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수어 하면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받아" "수어 하면 말을 못 해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적으로 도태되기 쉬워.". 실제로 과거에는 이런 생각으로 인해 수어를 배우지 않고 자라는 이들이 많았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여기 이곳에 청각장애인이지만 수어를 배우지 않고 자란 사람이 있다. 편의상 그를 존이라고 칭하겠다. 존은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았다. 존은 수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수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랐다. 그렇다고 구어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다. 존은 수어를 몰라서 수어를 구사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없었고 구어를 하더라도 그가 하는 말을 청인 친구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으며 청인 친구들이 하는 말 역시 존은 이해하지 못했다. 존은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채로 자랐다. 이런 존과 대화를 하려면 글자를 써서 소통을 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존이 글자의 뜻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몸짓과 물건을 가리켜가면서 소통해야 했다. 누구와도 소통이 원활하게 잘 되지 않다 보니 농인들 틈에서도 청인들 틈에서도 잘 섞이지 못했다. 존은 언제나 외로웠다.
이렇게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수어조차도 배우지 못하면 문맹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데 언어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를 이용한 다른 지식들을 탐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르신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종 젊은 친구들 중에도 존재한다. 비단 과거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문맹률은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졌지만 사회적 소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만약 그들이 수어를 배웠더라면 수어를 모르는 청인과는 소통이 어려웠을지라도 수어를 아는 이들과는 소통이 잘 되었을 것이다. 언어를 모르는 것에 따른 소통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가 정해주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존이 전혀 들리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면 수술이나 보청기로 인해 잘 들리는 이들은 다를까? 종종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혹은 우리 애는) 잘 들려서 수어 안 배워도 괜찮은데? 말로 소통하면 되지 굳이 수어를 왜 배워야 하지?"
그러나 이전 글에서부터 누누이 강조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여 나아진 성능을 가진 인공와우 수술을 진행하고 보청기를 활용한다 하더라도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잘 들을 수는 없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수업을 100% 빠짐없이 다 이해하면서 듣는다면 농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보의 접근성에서 필시 누락되는 부분이 발생하는 신체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하거나 보청기를 한 청각장애인도 수어를 배우고 이를 활용하여 귀가 놓친 것을 눈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수어중심의 농교육 환경 조성 & 전문성을 갖춘 교사 배출
청인들은 듣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방식처럼 음성 언어로 설명을 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농인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말을 많이 하며 설명하여도 누락되는 정보가 있기 마련이다.
농인은 귀를 사용해야 하는 음성 언어로 설명했을 때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어로 설명했을 때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농인에게 교육을 할 때는 음성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어를 중심으로 교육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수어가 아니라 구어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 역시 수어를 모르기 때문에 학생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슨 말인지 모르는 수업을 참석하다 보면 자연히 농 학생들은 교육에 대해서 포기하게 된다. 아무리 듣고 싶어도 들리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수업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눈으로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농인들에게 귀로 세상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이 상황이 과연 평등한 인권과 교육권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수어 중심의 교육으로 수업마다 수어통역사가 배치되거나 혹은 수어를 잘하는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한다면 자연스레 농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수업을 듣는 내내 어떤 말인지 보이고 이해할 수 있으며 수업 도중에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지 묻고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환경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오직 대학 진학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작은 사회와 같다. 학생 신분으로 있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은 배우고 익히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세상이 어떤 곳인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이처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자신이 처한 장애 상황에 맞는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며 보내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지나온 나의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누군가의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교육에 대한 개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