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이 편한 것 같아
나는 때때로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들리지 않는 것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와 같이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지만 가끔 너무 시끄러운 이들과 함께 하게 되어서 이동 내내 시끄러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이런 나의 생각에 공감이 될 것이다.
심지어 그런 상황을 대비하여 귀마개라는 제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의도적인 고요함을 원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귀마개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소음에 놓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종종 와우 기기 전원을 끄는 나로서는 이런 의도적인 고요함이 얼마나 큰 편안함을 주는 것인지 잘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끄러울 때 굳이 들을 필요가 없고 듣고 싶지도 않아서 일부러 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것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들리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은 있을까?
당신은 아주 특별한 기념일을 맞이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은 이런 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그런 당신에게 친절하게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고 메뉴판을 주면서 이달의 메뉴는 어떤 것이 인기가 많은 것인지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주문 결정하면 불러달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펼쳐든 메뉴판에는 다양한 선택권이 존재한다. 어떤 음식을 고르고 어떤 세트를 해야 할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이 골라야 한다. 찬찬히 메뉴를 살펴보다가 A세트를 하겠다고 결정을 한 당신은 주문을 위해서 직원을 부른다.
당신의 주문을 받은 직원은 당신에게 질문한다. 파스타나 리소토 중에 무엇을 먹을지, 크림이나 로제 등의 종류 중에서 어떤 맛을 선택할지 그리고 스테이크는 레어, 미디엄, 미디엄 레어, 웰던 중에서 어느 정도의 굽기로 구울 것인지 음료는 레몬 에이드, 블루베리 에이드, 석류 에이드 등과 같이 수많은 종류 중에서 어떤 것으로 선택할 것인지와 같은 것들을. 메뉴판에 없는 다양한 커스텀들에 대해서 선택하고 나서야 직원은 주문을 재차 확인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렇듯 대부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이런 식으로 주문이 이뤄진다. 청인들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을 겪는다면 잘 들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닌 구화인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직원이 밝게 응대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얼추 손짓과 표정으로 보아하니 환영을 하며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 같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즐거운 식사를 위해 방문한 연인이나 가족들로 테이블이 가득하다. 칸막이가 있어서 서로의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지만 너머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은 고요함보다는 북적거린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A세트로 결정한다. 잠시 후 직원을 부르려고 보니 직원들은 하나같이 바쁘다. 소리를 내어 불러보았으나 용기 낸 목소리는 수많은 소리에 묻혀버린 채 사라진다. 혹여나 테이블 위에 호출벨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사람 간의 소통을 중시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호출벨이 존재할리가 없다.
그저 자리에 앉아 직원이 테이블 근처를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다가 겨우 직원을 붙잡고 주문을 한다. 그러자 직원이 무언가를 말한다. 분명 나의 시야에서 눈 맞춤을 하고 친절하게 말을 해주는 것 같지만 마스크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 작다. 말이 천천히 흘러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입에 붙은 말들은 속사포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고 직원의 목소리 역시 주변의 시끄러움 속에 금세 묻혀버린다. 재차 물어본다 "네?" 그러자 직원은 아까와 같은 속도와 크기로 다시 말한다. "네?" 의도치 않게 몇 번의 질문으로 상냥했던 직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겨우 원하는 바에 따라 주문을 마무리했지만 식사를 마치기도 전부터 벌써 진이 빠진다.
이건 그러니까 꼭 이런 상황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구화인들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시끄러운 상황은 클럽과 같은 곳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일상 대화처럼 말하면 잘 들리지 않는 그런 곳.
그러나 구화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저 그런 소음정도로 느껴지는지라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도 충분히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인지 상대방은 귓속말이 필요한 당신에게 마스크를 끼고 자기 할 말만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화인들은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묻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귀가 들리지 않으니까 마스크를 벗고 말해달라거나 조금 더 크게 말해달라거나 글로 적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모두가 잘 알다시피 한창 코로나19가 심각할 때는 마스크를 내려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개인의 건강상 안전을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인데 나의 편리를 위해서 상대방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을 요청하는 것은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물론 상황이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이 부분은 여전히 섣불리 요청하기 어렵다.
그리고 크게 말해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간혹 소리를 지르듯이 크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아주 크게. 분명 그렇게까지 크게 해야 할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이런 배려는 고마운 일이지만 예상치 못하게 너무 큰 소리라서 아주 당황스러울 때가 참 많다.
마지막으로 글로 적어달라고 하면 종이나 펜이 있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도 나도 서로 허둥댄다. 마치 오지 않을 것 같은 손님을 맞이한 듯 종이와 펜을 이리저리 찾아 헤맨다.
이런 번거로운 상황을 몇 십 년간 해오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선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이 굉장히 불편해진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매번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의사소통을 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 사건이 생겼다.
워터파크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곳은 보청기도 인공와우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잘 알아듣는다 한들 그들이 하는 말을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그러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아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글로 적어주시겠어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뭐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소통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했건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고플 땐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말없이 딱 세 가지만 했다.
1. 직원 얼굴 쳐다보기.
2. 손짓으로 떡볶이 메뉴판 가리키고 손가락 1개 펼치고, 어묵 메뉴판 가리키고 손가락 2개 가리키기.
3. 다시 직원 얼굴 쳐다보고 고개 끄덕이며 웃기.
웬걸? 이렇게 하니까 직원분은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펼쳤다.
매번 음성으로 물어보고 음성으로 대답이 돌아왔으나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 불편했던 반면 이번에는 손짓으로 질문해서 손짓으로 대답이 돌아왔던 것이다. 늘 소통을 애매하게 하던 내가 단번에 무슨 말인지 소통이 되었던 이 순간은 "와! 이거 너무 편하잖아?"라는 생각이 들기 딱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진땀이란 진땀을 싹 다 빼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말없이 수어 사용할걸.." 그랬으면 굳이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이미 상황 파악이 다 되었으니까 직원이 알아서 메뉴판을 짚어주든 글을 쓰든 휴대폰 문자로 써서 보여주든 시각적인 소통을 하려 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를 느끼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애매하게 알아들을 바에는 아예 안 들리거나 아예 잘 들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