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두 번째 배란일 검사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는 이번 사이클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약을 먹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배란 유도약은 생리 시작 중에 먹어야 하므로 생리 시작하는 날이나 생리가 시작하고 이틀 후쯤에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셨다.
수납을 위해 일층으로 내려가던 길
복도와 로비를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들의 부른 배와 손에 들려진 아기 바구니는 작은 숨결의 존재에 대해 느끼기 충분했고 진료실부터 수납처까지 분명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에는 억겁과도 같이 기나긴 거리였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특별한 일이 될 수 있구나'
'다들 쉽게 찾아오는 것 같은 씨앗이 왜 나한테는 이렇게 어렵게 찾아오는 것 같지?'
임신하거나 아이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저 그렇게 바라보던 시선이 부러움과 질투 사이에 걸쳐진 시선으로 바뀐 나를 보면서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잘 바뀌는 것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남들은 다 쉽게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어려운 것 같은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감정들을 통해서 나는 진짜 이번에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마음과 달리 신체적으로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이번 사이클은 그냥 넘기게 되었지만 말이다.
뭐 어쩌겠어? 생명은 내가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대 그저 하나님의 뜻에 맡겨버리고 나는 다시 내 삶을 살아야지!
신나게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엽산만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배란테스트기도 하지 않고 생리 예정일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즐기던 때, 아버님께서 긴 여행을 다녀온 우리에게 "여행 가서 사고 치지 않았냐?"라고 물어보셨다.
시부모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2세 소식을 기다리시는지 너무나도 잘 알던 터라 그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세모눈으로 치켜뜨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담으며 또 생각했다.
와.. 아무렇지 않게 2세 소식을 물어본다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상처로 작용할 수도 있는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2세를 강요당하는 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스트레스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2세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스트레스다
작은 말 한마디로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기다리는 이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는 말
"아기 안 낳아?"
이야말로 지나가는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한다. 나의 작은 말이 누군가에게 가시가 되어 박히지 않도록 이런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