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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Sep 26. 2023

고양이를 돌보며 느낀 생각

고양이 돌봄과 육아의 비슷함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는 총 세 마리다. 처음 결혼할 때부터 고양이를 들일 생각이었는데 한 마리는 외로울 수도 있으니까 두 마리까지만 데려오자 했던 것이 어느덧 세 마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친정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주 새끼 때 어미로부터 버려진 녀석을 데려온 것이라 그런지 비교적 스트레스도 덜 받고 친정집에서 무척 잘 적응을 한 덕분에 7살이라는 나이까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반면 우리 집에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성묘로 유기되어 있었고 포인핸드(유기된 동물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어플입니다 이를 통해서 유기된 동물 정보를 알 수 있으며 그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를 통해서 데려왔다. 그간 어떤 가정을 만났고 어쩌다가 길 위에서 험난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데려오고 나서 이런저런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들에게서 하나씩 아픈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지만 아픈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녀석들이 버려진 것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수컷만 세 마리 키우다 보니 수컷들은 영역 및 서열 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에 합사 하기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세 마리는 지리멸렬하게 싸우다가 이제는 미우나 고우나 한 집에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납득한 것인지 이전처럼 피 터지게 싸우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이는 좋지 않다.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은데 계속 마주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지독히 쌓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갑자기 내던져진 길 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걸까? 특히나 수컷 고양이들은 방광염이나 신부전 같은 요로계 질환이 무척 잘 발생하는데 세 마리중에 두 마리가 요로계 질환을 앓았다.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거나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은 가장 마지막에 온 녀석을 다른 집으로 보내버리라고 한다. 뒤처리하기 바쁜데 남편은 화만 내고 애들은 애들대로 으르렁대니 나도 지칠 때가 있다. 때때로 상황이 너무 버거워서 정말 남편 말대로 해야 하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의 짧은 묘생이지만 우리와 함께 연을 맺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이 녀석들이 다시 버림받는 상처를 받지 않도록 마지막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까지 보살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이기곤 했다. (그럼에도 애들이 투닥거릴 때면 혹시나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끔은 스친다)




그날은 암막 커튼 사이로 슬며시 비치는 빛이 회색 빛으로 짙은 것으로 보아 '오늘은 비 오는 날이구나' 짐작하던 아침이었다. 비 오는 날씨 탓일까 눈꺼풀이 유난히 무거웠다. 아침밥 달라고 야옹야옹 외쳐대는 아이들을 향해 가던 순간 한 마리가 이상했다. 화장실을 오래 앉아있다가 별 소득 없이 나오더니 세 곳의 화장실을 모두 그렇게 들락날락거렸다. 너무도 익숙한 그 패턴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 지금 오줌 못 싸고 있구나..'


덜컥 심장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지난날의 기억이 훅 하고 밀고 들어왔다.


남편은 장기 출장으로 해외로 떠나 있었던 차라 곁에 없었고 나는 회사일을 하랴 집안일을 하랴 혼자 이리저리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한 녀석이 오줌을 누지 못했다. 이상하리만치 오래 화장실에 있음에도 별 소득이 없는 녀석을 병원으로 데려갔더니 요로계 질환이 있었고 신부전 증상도 무척 심각한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왜 병원에만 가면 아이들을 향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일부러 겁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한 마리씩 데려갈 때마다 이런 말을 들으니 막막했다. 더구나 이 녀석만큼은 건강하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건만 얘마저도 심각하다는 말은 우리 곁에 있는 녀석들의 삶이 얼마나 유한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내편은 곁에 없었고 혼자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드는 모든 상황이 맞물려서 우울지수는 최고치를 향해 달려 나갔고 매일 밤마다 베개는 축축하다 못해 차가워졌다.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후 반차를 써야 하나 고민하는 출근길 내내 미래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다양한 기쁨을 느꼈다. 밥 달라고 아옹거리는 모습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 반가움에 현관까지 달려 나왔으면서 막상 마주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제자리로 가는 모습을 볼 때, 무척 지쳐서 누워있을 때 내 곁에서 엉덩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있거나 배 위에서 가르릉 거리며 꾹꾹이 해주는 순간과 같이 매 시간 모든 때가 그들의 존재 자체로 나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었다.


동물이라는 존재조차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피로 이어진 혈육의 존재는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지.


고양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세 시간 연차를 쓴 날, 내게 가족과도 같이 소중한 녀석이 아프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집에 있는 녀석에게 내가 없는 사이에 별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랬다. 아니 동물도 이 정도인데 사람은 오죽할까?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힘께 아파진다더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정신이 온통 아이에게 쏠리게 된다. 워킹맘이라면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연차를 써야 할 것이고 아이 때문에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이 되다 보면 자연스레 회사일을 지속해야 하나 여부를 고민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과연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누군가가 아플 때 나는 강한 멘털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내 편이라는 사람이 곁에 없는 순간에도 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남편이 한국에 있지만 우리가 계획하는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물론 계획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시기는 남편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자 해외출장을 앞둔 시점이다.


앞서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시피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딱 맞아떨어질 확률은 낮다는 사실로 미뤄보아 어쩌면 남편이 해외에 있을 때 나 홀로 누군가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밤인지 낮인지 분간되지 않을 시간을 나 홀로 보내게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어찌 되었든 큰 일을 홀로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강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동물의 존재와 함께하며 또 다른 생명과 함께 하는 미래는 어떨지 떠올려보았다. 동물이 아픈 순간을 통해서 워킹맘의 마음에 대해서 소금알갱이만큼 알듯도 한 이 경험은 엄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그만큼 강한 사람이었던가? 혹은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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