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의 조건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이에게 폭언이나 폭력과 같이 정신적 및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는 것이나 있는 듯 없는 듯 방임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그러나 좋은 부모의 모습에 대해서는 마치 뿌연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지만 대부분 주변 이들은 이미 부모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모의 모습을 접하게 되는데 똑같은 부모라도 모두 같지 않았고 똑같은 연령대의 아이라도 같은 모습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같은 연령대의 아이지만 어떤 아이는 물건을 던지거나 어지르고 악을 쓰는 것이 당연한 반면 어떤 아이는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가진 것이었다.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다르게 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떼를 쓰는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그저 어르기 바빴다. 아이가 물건을 던지면 "안되지~"라고 말하면서도 직접 물건을 다시 가지러 갔다 왔으며 아이가 악을 쓸 때면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아이를 굉장히 귀찮아했다. 반면 다른 이는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면 단호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제지했다. 한 번은 아이가 가위를 들고 놀려고 하자 가위가 어떻게 위험한지 그리고 왜 가지고 놀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행동을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아이의 볼에 뽀뽀해 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임은 동일했지만 설명 없이 안 돼라고 말하는 것과 설명을 포함하여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 부드러운 어조와 단호한 어조에서 오는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부모로서 아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는 예의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느냐 그렇지 않게 하느냐를 판가름 짓게 했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봐 오면서 무작정 사랑을 주는 것만이 답은 아니며 무작정 엄해지는 것 역시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하나씩 배운다.
책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를 읽었을 때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에 대해서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가 직접 솔선수범하여서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아무리 아이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가르친들 아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보고 들은 대로 자란다는 것이다. 결국 바른 아이를 원하면 바른 어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정말 바른 어른인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요즘 나오는 육아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보나 주변의 아이들을 보더라도 그들이 천사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악마처럼 보일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은 육아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어떻게 가지고 낳을 것이냐에 대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결국에는 아이를 가지고 낳는 것의 최종 목표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모가 되고 어떻게 키울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이며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 이런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한다. 우리의 신체적 특성상 자연히 느려질 수도 있는 아이의 언어발달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