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에서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음을 소리로 인지하는 그 순간, 밖을 서성이는 어떤 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초조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오간다.
잠시 후 간호사가 그를 불러들인다. 간호사의 품에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느라 갓 수확한 고구마처럼 붉은 피부를 가진 아기가 안겨져 있다. 그녀는 그에게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보여주며 말한다. "아기 손가락 발가락 다 있습니다"
그제야 아기의 존재를 확인한 그는 아기의 손과 발을 보고 난 후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간호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짓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눈썹을 올려 보인다. 그의 눈빛에서 소리가 들리는 아이인지 물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간호사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곤 아기와 함께 문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가 새로운 생명을 처음 마주한 순간에 대한 일화다. 대부분 청각장애인 부모가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우리의 미래 역시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이전에 딩크의 입장을 고수할 때 '장애가 유전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한 몫했다. 난청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고도난청으로 태어날 확률은 1,000명 중의 1명 꼴로 0.1%의 확률을 지닌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 있는 청각장애인 부모의 자녀들이 모두 비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청각장애의 유전에 대하여 지극히 낮은 확률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0.1%의 예외 상황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예정에 없는 임신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고 누구보다도 계획 임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하게 인지하게 만들었다.
손톱 옆에 자그마한 거스러미만 일어나도 해당 손가락 부위가 아리고 자꾸 신경 쓰인다. 우리의 신체는 이토록 사소한 것조차도 예민하다. 그런 인간에게 장애로 인한 신체적 불편은 오죽할까. 불편함은 둘째 치고라도 현실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삶은 마냥 녹록지 않다. 숱하게 겪어온 다양한 차별의 시선과 불편함 속에서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는 것과 같이 자유자재로 신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어떠한 신체적 사소한 결함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공부한다고 해서 생명에 대한 모든 것들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덜 두려워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존재가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앞으로 내 생에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본격적인 공부라고 지칭하기도 어색하지만 하나 둘 읽어 내려간 책 속에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은 임신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려주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이들이 꼭 챙겨 먹는 영양제가 있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든 꼭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영양제. 바로 엽산이다. 주변 사람들이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서 챙겨 먹는다고 하길래 그저 '그렇구나'하고 말았건만 왜 엽산을 챙겨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때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다.
임신과 관련된 책에서는 하나같이 엽산은 가급적 임신을 계획하는 3개월 전부터 꾸준히 복용할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엽산은 태아의 선천적 결함 및 임신 합병증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엽산을 복용하는 목적이 건강한 태아를 위해서라면 임신을 하고 난 후에 먹어도 되지 않나? 굳이 3개월 전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아기가 생긴다는 것은 어릴 적 성교육 시간에 배워서 알았지만 그렇게 만난 세포들이 자궁벽으로 이동하는 내내 바쁘게 세포분열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이미 중추신경계와 심장이 발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알고 있는 임신이란, 드라마에서 한 여자가 가족과 밥을 먹다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가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축하드립니다. 임신 4주 차네요"라는 음성과 함께 까만색으로 이뤄진 사진을 들고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본 것이 전부였다. 까만 배경 안에 고이 놓인 작디작은 콩알 같은 점 하나가 임신을 알리는 지표가 되는 만큼 나는 임신에 대해서 인지하는 순간부터 아기가 자란다고 생각했다.
자궁벽에 착상을 하는 순간부터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심장, 척추, 뇌 등 여러 가지 신체기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만들어지면서 착상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임신을 인지하게 되는 4주 차에는 이미 신체의 중요한 중추신경과 심장이 발달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자와 정자가 만난 순간부터 빠르게 주요 기관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니, 그것도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심장도 함께! 왜 그렇게 많은 책들이 하나같이 엽산을 임신을 계획하는 3개월 이전부터 미리 복용하라고 권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임신은 차치하고서라도 엽산은 뇌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까 건강을 생각해서 엽산을 복용하기로 했다. 이왕 먹는 것 잘 챙겨 먹자고 다짐하다 보니 비타민D, 마그네슘, 유산균도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남편은 나와 함께 엽산을 먹으면서 그토록 즐기던 음주 횟수를 확연히 줄였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흔하디 흔한 말이 사실 얼마나 어렵고도 다른 어떤 바람보다도 간절한가.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