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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Sep 13. 2023

외벌이로 살아보기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흔하디 흔한 말처럼 세상은 돈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 그리고 믿음과 정직 등과 같이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할 때 비로소 돌아간다. 돈에 살고 돈에 죽고 오직 돈만 좇는 인생은 너무 각박해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돈이 없으면 아무리 세상의 전부가 돈이 아니라고 한들 돈이 세상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어진다.


가난은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없게 하고 수중에 있는 돈을 헤아려 음식을 선택하거나 포기하게 했으며 꿈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지독한 가난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 겨우 앞가림이 가능해졌을 때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다. 먹고 싶고 사고 싶었던 것들을 스스로 노동하여 번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난생처음으로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쥐꼬리만 한 급여였지만 이 작은 급여는 남들 아무렇지 않게 하던 기본적인 것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사람답게 사는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게 된 기분이 어떤지 너무 잘 알았고 나의 앞가림조차도 버거운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올지 잘 알았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옹졸해지고 싶지 않아도 옹졸해지게 만들고 작아지고 싶지 않아도 작아지게 만들던 가난은 딩크를 결정한 어떤 이들의 결정처럼 나에게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 화장실 문짝에 붙여져 있거나 종종 흘러나오는 TV 광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부 요청 홍보들. 이런 류의 많은 글들과 영상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아파하거나 우는 장면들이 꼭 담겨 있다. 국내 국외 상관없이 기부를 요청하는 내용들은 가난한 집이나 나라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식사와 치료 등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초첨이 맞춰져 있다. 측은지심이 일어나게 하여 기부를 일으키게 하려는 방법이 될지라도 나는 이런 류의 홍보가 너무 싫었다. 측은한 마음보다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먼저 일었다. 가난하면서 왜 아기를 낳지? 왜 낳아서 본인도 고통받고 죄 없는 어린아이 마저 고통받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분노는 나의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그렇게 가난에 대한 처절한 기억은 기를 쓰고 돈을 모으게 했고 재테크와 관련된 책에 손이 가게 만들었다. 이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했으며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라면 2세는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아닌 솔직한 감정을 따르기로 마음이 기울었을 때 나는 마음만큼이나 지독한 현실도 돌아봐야 했다.



좋든 싫든 출산과 함께 갑자기 외벌이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순간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맞벌이지만 외벌이가 되어보기로 했다. '과연 한 사람의 몫으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외벌이로 살아보기.


여태 각자 벌어서 서로의 급여를 합쳐서 관리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돈이 전혀 없다는 가정 하에 지내야 했다. 나와 남편의 급여에서 생활비 빠지고 적금 빠지고 고정비 빠졌었는데 이번에는 생활비도 적금도 고정비도 모두 남편의 급여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없는 셈 치는 작고 소중한 나의 급여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었다.


남자 성인 하나, 여자 성인 하나, 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이 모두를 먹여 살릴 급여는 단 하나.


이틀을 꼬박 가계부만 붙잡고 늘어졌다. 적어진 예산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머리를 꽁꽁 싸매고 싸매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필요했다. 겨우 정리한 외벌이 예산으로 살아본 첫 한 달은 무척 쪼들렸다. 남편은 툭하면 용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으며 두 사람 모두 이전처럼 쓰던 버릇이 남아서 당장 쓸 돈이 금방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지출을 미뤄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되던 식비를 줄이기 위해서 외식과 배달을 줄였고 도시락을 활용했다. 미래의 돈을 끌어와 쓰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현재의 돈을 미래에 쓰기 위해서 목적을 정한 저축을 늘렸다. 이렇게 돈의 사용처를 달리하고 미리 짜둔 예산에 맞춰서 생활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차츰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어서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부유한 누군가처럼 유학을 걱정 없이 척척 보내주는 부모는 되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것조차 없어서 못해주는 부모는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라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까마득하고 이렇게 준비한다 한들 미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조금씩 준비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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