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보다 감정
임신 및 출산과 관련한 결정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바탕으로 내려진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지나는 이들은 대부분 아래와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1. 아기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2. 더 늙기 전에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3. 결혼하자마자 아기가 생겨서.
4. 아기를 낳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서.
이런 이유에 대한 나의 의견은 언제나 반대 방향에 서 있었다.
1. 시끄럽게 울어대고 통제불가능한 아기가 뭐가 이쁘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며
2. 생물학적 나이에 쫓겨서 출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직 출산을 위한 존재로 느껴지게 했으며
3.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예상치 못한 임신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에 가까운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고
4. 출산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진 나로서는 출산으로 인해 주어지는 장점(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아이가 주는 행복감)보다는 단점(경력단절, 급격히 저하되는 체력, 기존과 완전히 달라지는 생활패턴)이 훨씬 더 잘 보였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것저것 재고 따지면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것이 출산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현실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앞의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종종 우리의 2세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곤 했다.
타인의 말을 믿기보다는 직접 보고 느끼면서 '그렇구나!'라고 판단이 들었을 때 확실히 믿는 성향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유에서 간에 나는 말하는 상대방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육아는 힘들지만 그만큼 더 큰 사랑을 느끼게 해"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언제나 "에이, 말이 그렇지 현실은 힘든 것 투성일 텐데..."라는 생각으로 콧방귀 뀌었다.
하지만 "나랑 결혼하면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라고 백번 말하는 사람보다 단 한순간도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게 먼저 설거지를 해주는 사람이 더 믿음직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행동이 더 큰 힘을 일으킬 때가 많다.
아무리 나처럼 아기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남편이라 한들 나보다 아이를 더 잘 케어하고 아기들 역시 그를 잘 따르는 남편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이 사람은 내가 봐왔던 타인들과 달리 아기를 잘 돌보고 양육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연애를 하면서 보여준 그의 눈빛과 행동에 담긴 확실한 사랑은 나로 하여금 그와 함께라면 지금도 행복하지만 앞으로 더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내리게 해 주었고 그 확신은 결혼에 대한 결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결혼으로 이어진 것처럼 지금은 그와 함께라면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힘듦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이성을 이긴 감정의 소용돌이 틈 속으로 한발 내디딘 순간 나는 그렇게 차츰 예상치 못한 틈 속으로 빠져들었고 이전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나로 변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