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 수 있는 일 : 제로웨이스트
어릴 적에는 길가에 활짝 피어있는 빨간 샐비어 꽃을 볼 때면 한송이 톡 떼서 꿀을 빨아먹곤 했다. 하늘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제외하곤 언제나 맑고 푸르렀으며 매캐한 미세먼지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샐비어 꽃이 더 이상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먹지 못하게 되었고 노란빛으로 뿌연 바깥을 바라보며 미세먼지의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제 일상이 된 기후위기는 점점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는 기후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한 곳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비가 내려서 홍수 같은 물난리가 일어나고 다른 곳에서는 너무 오랜 시간 비가 오지 않아서 멈추지 않는 산불이 일어난다. 어떤 곳에서는 끝 모르게 치솟는 기온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위에 쓰러지며 녹아버린 빙하로 차오르는 물은 삶의 터전을 삼키고 있다.
뜨거워진 지구는 바다와 땅 모두를 뜨겁게 달구었다.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의 수를 줄어들게 만들고 대지의 생기를 빼앗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옆 나라에서는 방사능이 포함된 오염수를 방류한다. 이 오염수는 지금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생명이 사라지게 하고 더 심각한 환경문제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기후문제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 바이러스도 만들어냈다. 앞으로는 코로나19보다 변이가 더 빠르고 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입모아 말한다. 지구는 자꾸만 뜨거워지고 바다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가고 있고 더욱 다양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되리라 예고하는 이런 세상에서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미 지구에는 인구가 지나치게 많고 지금 같은 기후위기 현상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원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비출산을 선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처음에 이런 내용의 글을 접했을 때는 기후위기와 출산을 연관 짓는 것은 너무 비약적인 표현인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다루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이제는 출산과 기후위기의 연관성을 조금씩 알 것 같다.
여성의 생리대 한 장에 자그마치 4장의 비닐이 들어간다.(책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p.74 참고) 작은 생리대가 이 정도의 비닐을 사용한다면 과연 아기의 기저귀에는 얼마나 많은 비닐이 들어갈까? 온종일 먹고 자고 싸는 한 명의 아기에게서 얼마나 많은 비닐로 된 기저귀가 버려질까? 기저귀뿐만 아니라 육아를 하는 동안에는 플라스틱 젖병, 플라스틱 장난감, 플라스틱에 담긴 다양한 물품 등..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고 이 물건들은 언젠가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된다. 새로운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남과 동시에 딱 한 사람만큼의 많은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지구를 위해서 비출산을 선언하는 이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기존 세대가 누렸던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이 아니라 탁한 공기와 뿌연 하늘을 보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듦에 따라 그들이 보고 먹는 모든 것들이 변화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던 코로나19 시대의 베이비들처럼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이 마주하게 될 상황 역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과연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정녕 그들을 위한 것일까?
기후위기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기후위기를 감당할 그들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덜 뜨거운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다시 고려해야 할 문제 같다. '낳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로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낳지 않아야 한다'는 확고한 답이야말로 정답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는 물음이 따라오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새로이 태어나고 누군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지금, 우리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될 그가 마주할 세상이 덜 나빠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물티슈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누군가 말하기를 아이를 키우면 무조건 물티슈가 필요하다고 했다. 육아를 하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니 과연 물티슈는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수시로 더러워지는 아이들의 입과 손을 닦아줘야 했으며 잦은 용변을 처리할 때도 물티슈 하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다재다능하게 쓰이는 물티슈를 보고 있자니 역시 물티슈의 유용성과 편리성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물티슈는 플라스틱을 가느다랗게 뽑아낸 부직포로 만든 것이다. 더구나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화학처리를 한다. 썩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다양한 화학처리가 된 것이 과연 아이에게도 좋을까? 예민한 아기 피부와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물티슈보다는 빨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손수건이 더 좋을 것 같다.
2. 일회용 기저귀 대신 천기저귀 사용하기
여성의 생리대가 4장의 비닐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내게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루에 몇 십 개씩 버려지는 기저귀에는 얼마나 많은 비닐이 들어갈까 생각할 때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일회용 기저귀에는 천기저귀라는 대안이 있었다. 참으로 생소한 천기저귀라는 물건. 의외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엄마들이 꽤 있다. 아이들의 피부를 위해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많은 엄마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천기저귀 사용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지금 부모님이 어릴 적에 할머니들께서는 분명히 천기저귀로 부모님을 키우셨을 텐데..) 손수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기저귀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며 아이의 피부에도 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많이 번거로워질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한다면 나 역시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3. 중고물품 사용하기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지난주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 주에는 몰라보게 자라서 날 놀라게 하는 조카들만 봐도 틀린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아기들의 빠른 성장 속도만큼이나 짧게 쓰일 물건들이라면 굳이 새로 사지 말고 중고로 마련해보려 한다. 새로운 물건도 언젠가는 중고가 되고 그것이 쓸모를 다하게 된다면 결국 쓰레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쓰이는 쓰레기를 만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쓰임을 다하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중고 거래로 육아물품을 마련하는 것이 지구를 위해서도 우리의 가계 주머니 사정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중고 거래로 육아물품을 장만해야겠다는 이 작은 생각은 실제로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4. 장난감 도서관 활용하기
아기들은 연령별로 다른 장난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외로 아기마다 장난감에 대한 취향이 확고하다. 기껏 사줬는데 연령에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에는 애꿎은 돈만 날리는 것이다. (생각해서 사줬더니 박스만 고집하는 고양이와 다를 바 없군..) 성장단계별로 사용하는 장난감들이 다 다르고 아이들마다 장난감의 취향이 다르다는 점은 굉장히 많은 장난감을 필요로 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가 있는 집에 가면 가정집이 아니라 장난감으로 둘러싸인 놀이터를 방불케 한다. 대부분의 장난감이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짧게 쓰인다면 새로 사기보다는 장난감을 대여해 주는 장난감 도서관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잠시 빌려서 사용함으로써 집에는 물건이 쌓이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며, 아이에게는 다양한 장난감을 접할 기회를 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장난감 도서관의 세계는 별천지이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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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어보았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육아를 실천하는 것과 이렇게 글로 적어 내려 가며 생각하는 것의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존재할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물티슈보다는 손수건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너무 힘들어서 과거의 나의 어리석음을 욕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아이를 생각한다면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서 미래의 자산을 당겨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때때로 너무 지쳐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되는 일을 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을 하는 어른이 되어보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당장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지구를 구하겠다고 플러그를 뽑는 행동보다 기업에서 하루동안 전력을 덜 사용할 때 더욱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아무런 변화조차 일어나지 않을 아주 사소한 행동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이런 노력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작은 행동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한 사람의 변화는 그의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개인이 한 사람 더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개인의 영향력은 기업까지 닿을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생명에게 어떤 기후위기를 안겨줄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겪는 기후위기 상황에 비추어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면 끝없는 절망과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비극은 시작되는 법. 비극이 아닌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집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