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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Jun 15. 2023

우린 조금 외로운 사람들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와 외로움에 대한 연구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며칠 째 마트에서 숯불 화로를 산 뒤 반품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영수증을 잃어버려 세 번째 반품은 실패. 화가 난 채 물건을 들고 나와 트럭 뒤에 던져 놓는다. 사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집에서 죽기 위해 숯불 화로를 샀다가 반품했다가를 반복했던 것이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동차 시동을 거는데 뒤에서 울리는 신경질적인 '빵빵' 소리. 안 그래도 화가 잔뜩 나 누구라도 한 놈 걸려봐라 하는 참인데. 운전자가 손가락 욕을 날린다. 잘됐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잘 나가는 식물 인테리어 업체 CEO다. 하지만 남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억지 친절과 가식적인 웃음에 이제 신물이 난다. 잘 생기고 자상한 예술가 남편을 사랑하지만 늘 돈 버는 일은 자신의 책임인 것이 버겁기도 하다.  얼른 이 회사를 비싼 값에 팔아치우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날만 기다린다. 신경증에 걸린 여자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종종 거린다. 안 그래도 짜증이 나있는데 마트 주차장에서 욕을 해대는 남자에게 차장 밖으로 시원하게 손가락 욕을 날린다.




이야기는 두 남녀의 로드 레이지, 보복 운전에서 시작된다.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 <비프>에 등장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연은 각자 홀로 외로운 현대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브 연이 주연인 데다 미국에 자리 잡은 중국, 일본, 한국인 등 아시아인들의 삶을 다룬 미드라 새롭다. 이야기 자체로 빠른 템포의 거침없는 흡인력이 엄청났지만 미국에 사는 80년 대생들의 삶과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성난 사람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선택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로드 레이지로 시작한 스토리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기억과 상처, 트라우마와 오버랩되면서 예정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공격하고 비난하고 싶은 사람이 자기 자신인지 상대인지, 그들의 영혼은 온통 뒤엉킨 상태로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숲 바닥에 누워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에이미 : 누구랑 이런 식으로 얘기해 보긴 처음이야
대니 : 나도. 네 인생이 보여. 안쓰러워. 혼자가 아니기만 바랐을 뿐인데


성난 에이미와 대니


우린 그저 외로운 사람들


미국인들의 외로움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현재 미국인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증가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외로움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외로움과 고립은 노인들의 건강과 사망률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 한국인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조사나 통계는 없지만,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에 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크게 관계 부재로 인한 외로움, 관계에서의 외로움, 실존적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 부재로 인한 외로움은 교류하는 사람이 없는 적막함, 관계를 잃어버린 후 느끼는 허전함, 만남 후 느끼는 공허함 등을 말한다.


관계에서의 외로움은 가까운 관계에서 함께 나누지 못하거나, 연결되지 못할 때, 가까운 이의 삶에 융합돼 자신을 잃어버렸거나, 관계에 대한 기대가 좌절됐거나, 갈등으로 서운할 때 느끼는 외로움이다. 또한 집단에서 느끼는 외로움,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실존적 외로움은 진정한 자기로 살지 못한 자기 소외적 외로움, 쇠잔해 가는 쓸쓸함, 결국은 혼자라는 단독자로서의 외로움, 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헛헛함 등을 말한다.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래도 다행이야


외로움의 종류와 사연은 이렇게나 다양하다. 그리고 자신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현재의 상황이 비관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예후는 훨씬 희망적이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비프>의 두 주인공처럼 자신들이 마음 깊이 아주 오래도록 혼자여서 외로웠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억압한 채, 그저 세상이 이상하다고 탓하거나, 또라이 같은 사람 때문에 화가 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반갑고 즐겁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이 종종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잘 알아채는 사람일수록 몸도 마음도 건강할 가능성이 높다.


외로움은 삶이 계속되는 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잘 대처해야 할지 자신만의 방법을 연구하고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때로 외로움이라는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귀하게 여기고 따뜻한 마음으로 배를 든든히 채워 보내주는 것이 좋다.


지금 외롭다고 느낀다면, 성급히 다른 사람이나 물질을 통해 채우려고 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 자비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수용, 공감을 낳고, 이런 뒤에야 타인에 대한 진정한 연민과 연대감이 자라난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면, 먼저 나 자신과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는지 자문해 보면 어떨까.





* 참고 자료 : 안수정, 고세인, 김수림, 서영석 (2023).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에 대한 질적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 상담 및 심리치료


* 함께 볼만한 자료

"Social Isolation, Loneliness, and All-Cause Mortality in Older Men and Women" (2013)

Andrew Steptoe, Aparna Shankar, Panayotes Demakakos, Jane Wardle :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 (15), 5797-5801, 2013


“The loneliest generation: Americans, more than ever, are aging alone” Janet Adamy, Paul Overberg, The Wall Street Journa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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