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회전문가 Jul 05. 2023

무기도 되고 약점도 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한다

로또를 사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1등이 되면 엄마 반 줄게. 그럼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여행도 같이 가자”


그러자 엄마는 설레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래. 꼭 엄마 반 줘 “라고 대답했다.


덩달아 신이 난 내가 물었다.

“엄마는 1등 되면, 나 얼마 줄 거야?”


엄마는 정말 당첨이라도 된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오천만원...?”

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 금액에 내가 당황하는 듯 보이자, 엄마는 “너는 잘 살고 있잖아. 엄마는 가게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동생들도 아직 케어하고 있고, 챙겨야 할 식구들이 많으니까”라고 급하게 변명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알지, 알지.”라고 급하게 대답한 뒤 아무 말 없이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이게 벌써 작년 일이지만 어느 날 문득 그때가 생각날 때면 조용히 욕조에 물을 받는다.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누워있다가, 코가 찡-해지면 다리를 접어 얼굴을 물속에 빠트린다. 하나, 둘, 셋, 넷.... 머릿속에 온통 숨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열기에 얼굴이 벌게지고 퉁퉁 부어오를 때까지. 그래서 방금까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한다.

나를 가장 크게 웃게 하는 것들이 나를 가장 오래 울게 한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게 잘못일까,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들이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잘못일까. 뭐든- 이젠 상관없다.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케이크를 품에 안고, 분에 넘치는 선물과 축하로 1년 중 고맙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에도 엄마 아빠의 축하 전화 한 통이 없어 눈물을 터트린 날. 그럼에도 엄마아빠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날. 결심했으니까. 사랑을 덜기로.


가볍게 살려면 나쁜 것만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끔은 좋은 것도 내려놓아야 가벼워질 수 있었다. 사랑 같이 빛나고 예쁜 것도 꽉 쥐면 다칠 수 있고, 누군가를 찌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엄마는 이제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서운해. 우리 딸, 변했어."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한다.

"맞아."

대답 뒤에는 아무 말도 없다.

나는 여전히 앞을 보고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가끔은 일부러 후회할 짓을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