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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회전문가 Jan 18. 2024

"언니 너무 예뻐요"라는 말에 옳은 대답은?

칭찬을 잘 받는 법이 있나요

너 이거 진짜 잘한다. 

네가 최고야.


이런 류의 칭찬을 어릴 때는 참 좋아했다. 여느 어린이가 으레 그렇듯 칭찬을 듣기 위해 일부러 보이는 곳에서 착한 일을 하기도 하고, 싫은 것을 먹기도 하며, 귀찮은 일을 선뜻 도맡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칭찬을 받으면 그런 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던 일을 마저 하곤 뒤에 가서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물론 어른들 눈에는 다 티 났겠지만. 그때의 칭찬은 영양제였다. 어깨를 펴주고 목소리를 키워주는 영양제. 


세상만사에 불만과 불안이 가득하던 20대 초에는 칭찬이 싫었다. 왜냐하면 칭찬은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연막일 뿐이니까. 너무 부정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시작으로 일과 짐을 얹어주었기에 도저히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너 잘한다. 그러니까 네가 계속해. 너 최고다. 그러니까 내 것까지 해주면 안 돼?. 한 번의 칭찬으로 남의 일은 내 일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 그러니 그때의 칭찬은 백설공주의 사과였다.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보여도 사실은 나를 해하는 독사과.


시간은 또 열심히 흘러 20대 후반이 된 즈음에는 칭찬을 들으면 불안해했다.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사실은 잘 못하는데 어쩌다 한번 잘한 걸 가지고 높게 생각할까 봐. 그러다 원래 실력이 드러나는 어느 날, 내게 실망하거나 우습게 볼까 봐.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 세차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유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떨리는 눈동자로, 어쩔 줄 모르는 표정과 함께. 그때의 칭찬은 가방이었다. 남들에게 가짜임을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어깨에 메고 있는 짝퉁 가방.


그리고 지금의 나. 


30대 초반인 나는 순수한 칭찬엔 고맙다고 말하고, 칭찬을 빌미로 일을 주려고 할 땐 환하게 웃으며 단호하게 거절하며, 남들이 내게 환상을 갖는다면 '오히려 좋아'를 외치고 멋진 언니 코스프레를 하다가 본체(?)가 걸리는 날에 민망한 웃음을 지어버린다. 이제 나에게 칭찬은 영양제도, 독사과도, 짝퉁 가방도 아니다. 그저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오랜만이에요'와 같은 수많은 문장들 중 하나일 뿐. 


그렇지만 역시나. 아직도. 칭찬이 어렵다. 그저 많은 경험에 의해 자연스럽게 대처가 익혀졌을 뿐, 여전히 쑥스럽고 민망하다. 그래서 어쩔 땐 리액션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스로에게 한껏 수치심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아까 왜 그렇게 오버했냐. 아- 창피해.


도대체 어떻게 받아야 상대방도 나도 기분이 좋은 상태로 다음 대화 주제로 넘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언니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라는 인사치레 칭찬 같은 것들. "고마워"라고만 하면 너무 자뻑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작년에 쌍수했거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치는 노잼인간이 돼버리지 않나. 그러니 결국 "뭐야 네가 더 예쁘면서!"하고 오바쌈바를 떨면서 이 대화를 누군가가 듣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남자가 이 대화를 듣더니 왜 여자들은 예쁘지 않은데 서로 예쁘다 하냐고 비웃었거든. 야. 사회생활의 일환인 걸 모르니? 너도 하나도 안 멋진 형한테 멋지다 하면서 술 얻어먹잖아. 팍씨. 아무튼-


칭찬을 받은 세월로 치자면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했다. 말은 언제나 상황과 어감과 표정과 상대에 따라 모습을 휙휙 바꿔서 이번엔 정답이었던 게 다음엔 오답이 되니까. 

그럼 나는 언제쯤 칭찬을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중년이 되면 그땐 잘하려나. 


라고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한 가지. 정답을 알 수 없다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애초에 칭찬을 대처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 칭찬은 칭찬일 뿐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기분 좋은 말이다. 그러니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너무 우쭐할 필요 없이, 쓸데없이 경계하거나 부담 느낄 필요도 없이. 상대방이 나를 좋게 봐주는구나. 하하. 끝.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깊게 고민하는 걸까 싶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라서 어쩔 수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런 내가 멋있다. 스스로에 감정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나 자신. 최고야. 역시 칭찬은 속으로 할 때가 제일 속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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