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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레테 Dec 04. 2020

입사 4개월 차, 고객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Intro_내가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입사 4개월 차였던 26살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시절 팀장님이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고객사가 매출채권에 대한 담보로 등기부등본을 줬으니 권리관계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근저당권 설정하도록 해. 채권액은 15억 정도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게 건네진 문서는 다름 아닌 등기부등본이었다. 내 손에 쥐어진 문서를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갑구' , '을구'...? 이게 뭐지? 심지어 팀장님이 내리는 지시사항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가득했다. '담보' , '등기부등본; '권리관계', '근저당권'이라는 단어들도 생소했다. 황급히 수첩에 메모하면서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부끄럽게도 나는 26살이 되고 나서 등기부등본을 처음 보았다. 서울에 나고 자라 다행스럽게도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 번도 엄마 아빠 품을 벗어나 따로 자취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직접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공간으로 인식했지, 단순히 종이 몇 장에 담긴 2차원적으로 문서 몇 장으로 확인할 일이 살면서 얼마나 될 것인가?

(심지어 나는 금융권에 일하지도 않는, 일반기업의 마케팅부 소속 직원이었을 뿐이었다.)


지시사항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내 손에 쥐어진 이 문서가 무슨 의미인지도 더더욱 모르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채권에 대한 담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건지 매뉴얼조차 없었다. 너무나 응당, 당연하고 기본적인걸 지시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수첩을 닫으며 경직된 미소를 지었다.


"네 팀장님, 검토 후 보고 드리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로 SOS를 쳤다. 

너무 긴장하다 보니 통화하는 내내 목소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근무시간에 갑자기 전화 온 딸내미의 전화에 엄마는 맨 처음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등기부등본이란, 집의 권리관계 현황을 나타낸 문서이고, 여기서 권리관계란 누가 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 혹은 집주인이 남에게 돈을 주고 이 집을 빌려줬는지(전세/월세), 혹은 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문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갑구는 소유권을, 을구는 권리관계를 나타내는 현황이며 반드시 말소 사항이 포함된 내용을 바탕으로 등기부등본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다시 찾아보라며, 주소를 불러주면 엄마도 등기부등본을 조회해서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더듬더듬 문건의 주소를 불러주면서 몇 번이나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는지 몰랐다.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어떤 것을 확인해야 할지 정리를 하니 그제서야 백지였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엄마 설명을 들으니 인터넷을 통해 설명하는 블로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 상황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등기부등본과, 고객사의 매출채권 현황을 보면서 땅이 꺼질세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사 4개월 차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아, 부동산 공부를 해야겠구나.




고백하자면 나는 집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갖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피했다고 볼 수 있다.


때는 2008년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집값이 폭등했던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은 부동산 상승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리하게 '영끌'하여 재건축 아파트에 과감하게 투자했었다. 처음에는 쑥쑥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좋아했지만 그 안도는 채 3개월을 가지 못했다. 바로 금융 위기가 터진 것이다.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엄마 아빠의 투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무리한 투자의 역폭풍은 어마어마한 빚이라는 파도, 허덕이는 원리금 상환의 굴레로 되돌아온 것이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던 부모님이 엄청나게 힘들어했던 것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부모님은 결국 살고 있던 집을 싸게 파는 손해까지 감수하며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했다. 무리했던 투자의 쓰라린 실패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투자할때 다시는 부동산의 부자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며 치를 떨었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당시 신용 대출금리가 7%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가장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 고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면서 고리의 원리금 상환까지 해내기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집은 절대로 사지 말아야 하며(빚을 내야 하니까) 가능하면 빚을 내지 않고 전세로 사는 게 오히려 더 낫겠구나'라는 극단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잠시뿐이었지만 빚으로 고생했던 부모님을 보니 빚과 연결된 집이라는 자산에도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고의적인 회피는 대학교에 진학 후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도 내 인생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아니,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한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부동산, 이제 업무로서 떨어진 일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느냐는 바로 내 몫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주어진 업무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던, 빨간딱지를 붙여야 하는 '채권자'의 입장이 되다 보니, 처음에는 부동산 등기부가 무엇인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가 내친김에 경매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고객사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내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담보로 경매를 쳐서 채권을 회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경매 공부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이러한 매뉴얼이 있는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법무실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변호사는 딱한 얼굴로 신입사원이 이걸 하기엔 어려울 텐데, 난처하게 중얼거리더니 이것저것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 표정은 아마 가관이었을 거다. 잔뼈가 굵은 문과생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설명하는 단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의 경매, 가압류, 경매개시-.. 변호사는 내가 알지 못하는 용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나에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애쓰는 눈치였다. 나는 변호사가 불러주는 단어들만 수첩에 빼곡히 적으며 기계적으로 머리를 끄덕이다가 결국 자리에 돌아왔다.

 

자리에 돌아와 빼곡히 모르는 단어로 적힌 수첩을 바라봤을 때 그 절망감이란!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보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신만만하게 찾아간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니, 어설프게 아는 지식은 모르느니만 못하다. 이런 상황이면 업무를 진행하면서 모르는 게 발생할 때마다 

변호사에게 궁금한 걸 묻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십억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렇게 대충 알고 넘어갈 순 없었다.


이것저것 네이버와 유튜브를 뒤진 끝에, XX경매학원에서 무료로 경매에 대한 단기특강 시리즈를 찾았다. 시험 삼아 들어보니 교육업체가 제공하는 강의라서 그런지 체계적으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2강 정도 자리에서 듣던 나는 고민 끝에 해당 학원의 온라인 강의 기초 시리즈를 전부 (개인적으로) 결제했다. 무려 15만 원이나 들었지만 나는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이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주말 내내 강의를 들었다. 1번 완강 하고 나니 어느 정도 단어가 익숙해졌지만 내용이 정확히 이해가 가진 않았다. 업무는 빨리 진행해야 하니 두번째로 강의를 다시 들으면서 해야할 업무 순서를 정리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은 별도로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가 궁금했던 질문들은 아래와 같다.


- 채권최고액은 얼마큼 설정해야 하는지? 채권총액이 14억이라 가정한다면 채권최고액은 통상적으로 매출채권의 몇%를 설정해야 하는지? 

- 만일 다른 사람이 경매를 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1순위이면 돈을 받는데 문제가 없는 건지?

-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가압류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등등.


뭐 근저당권 하나 설정하는데 경매까지 공부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부분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라며 웃어넘겼던 최악의 상황- 고객사가 부도가 나면서 실제로 경매를 쳐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가 공부하면서 얻었던 지식을 바탕으로 경매 신청서와 지연이자, 채권 리스트 등 필요한 문서를 모두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법원에 제출 전 법무실에서도 내 서류를 검수하면서 비전공자 치고는 매우 깔끔하게 잘 썼다며 칭찬받기도 했다.




26살에 채권자가 되어서 근저당권도 설정해보고, 경매도 쳐보니 이 세계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빚을 만들기 싫어서 극단적으로 재테크는 저축만 하겠다고 고집했던 나의 경제관념도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투자라는 것은 그만한 지식이 축적되지 않는 한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충분한 성찰과 공부 없이 진행한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약 6년의 시간 동안 시중에 나오는 재테크 서적을 약 300권 가까이 읽었고,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재테크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자가를 마련하였고,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 취득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그러나 여전히 나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렇게 나는 재테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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