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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cefarniente Jul 12. 2018

남인도의 맛 b

디디의 카나 - 점심

"손으로 먹으면 더 강해지는 거야. 잘 봐, 이렇게!"




오후 1시 반,

잠시 머무르는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새로운 보조연구원을 합쳐도 열 명이 채 안 되는 이곳 작은 NGO의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준비해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친구의 고모댁-친구의 고모 중 한 분이 이 조직의 디렉터로 우리 모두의 보스이시다-에서 디디가 준비해주신 점심을 먹는다.


친구의 가족은 케렐라주에서 온 말레얄리(Malayali)이고, 디디는 카나타카주에서 온 칸나디가(Kannadiga)로 아침보다 좀 더 풍성한 점심의 식탁은 두 지역의 레시피, 남인도의 맛으로 가득 찬다.





 -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샐러드는 일반적인 인도식당에서는 찾기 어렵다. (메뉴판에 있는 샐러드를 시키면 보통 토마토, 양파, 오이를 큼직하게 썰어서 드레싱 없이 준다.) 신선한 채소를 많이 먹기 위해 노력하시는 고모께서는 무농약 채소를 특별히 따로 주문하시고 집으로 배달받으신다. -


음식의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점심은 아침보다 식사시간이 길기 때문에 식탁 위에서는 더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가며, 특히 음식 자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집에서 직접 로티(Roti), 차파티(Chapati)와 뿌리(Puri)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차파티는 로티의 일종이다. 보통 조금 더 얇게 만든 것을 차파티라고 부른다고 한다.)


밥이 아닌 차파티나 뿌리를 점심으로 먹는 날이면 디디께서는 아침을 먹자마자 반죽을 준비하신다. 숙성이 된 반죽은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해서야 차파티 혹은 뿌리로 탄생하는데 디디께서는 내가 이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밀가루 묻은 손 대신 고개로 까딱까딱 부엌을 가리키시며 '경진, 컴! 컴!'하고 나를 꼭 부르신다.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나에게도 쉽지 않아(...?!) 늘 외국에 나가면 발음하기 쉬운 다른 이름으로 불러달라하고는 하는데 -그동안 참 다양한 언어권에서 많은 이름들을 시험해보았다- 같이 온 친구를 비롯한 이 곳 모든 사람들이 나를 '경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항상 그렇게 불리고 수많은 곳에 내가 내 이름이라고 적은 이름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내 원래의 이름으로 불려지니 참 어색하고 기분이 묘하면서도 너무너무 좋다!)


 

식당에서도 물론 로티나 뿌리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를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대단한 경험이라고 느끼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디디가 로티나 뿌리를 웬만한 식당의 셰프들만큼이나 잘 만드시기도 하지만, 바로 옆에서 요리의 단계 단계에서 느껴지는 모양, 색깔, 냄새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어릴 때 하던 과학실험보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음식에 디디의 '손맛'이 더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왠지 모르게 음식의 맛을 한 껏 더 끌어올린다.


디디께서는 로티를 이렇게 만드신다!


알려져 있듯이 인도에서는 손으로 밥을 먹는데, 아직 나에게 손으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쉽지 않다. 국물이 손바닥과 손목을 지나 팔꿈치까지 줄줄 흐르기도 하고, 오목하게 만든 손가락에 여전히 남은 국물을 후루룩 빨아들이기가 다반사이다. (식탁에서 오로지 나만 후루룩거린다.) 이러한 불편을 피하기 위해 내가 로티나 뿌리를 커리나 처트니에 '찍어' 먹고 있으면 디디께서는 입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음식을 손에서 뺏어 커리나 처트니를 다시 꼭꼭 눌러 담아 내 입에 경쾌한 스냅으로 쏙 넣어주신다. (인도 사람들의 손은 접시 위에서 매우 리드미컬하고 힘 있게 움직인다.) 그때마다 나는 흰 밥에 발라진 조기살과 돌돌 말은 열무 지짐이를 손으로 얹어주시곤 하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했다.  




언젠가 디디께서는 나와 내 친구에게 '손으로 먹으면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손끝을 통해 온 몸의 기운이 음식에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 친구는 나에게 통역을 해주면서 '에이, 안 그래요.' 했지만 나는 왠지 디디의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손으로 음식을 먹기 전까지 익힌 감자와 양파, 혹은 닭고기나 생선이 손으로 자르거나 으깰 때 그런 촉감을 주는지 몰랐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온도인지 그렇게 직접 느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때로는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서 입에 넣기 전에 이미 단 기운, 짠 기운, 혹은 매운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음식으로부터 어떠한 기운을 느끼고 있으니 분명 나도 음식에게 어떠한 기운을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아. 먹는 방법에 왜 이렇게 심각해?'하면 할 말이 없을 수도 있으나,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나에게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 그리고 먹이는 것이 주는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식구들을 먹이고, '오늘 점심 어메이징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디디에게 힘을 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맛있는 음식을 손으로 직접 통제하고 입에 집어넣는 행위 역시 포크나 젓가락과 같은 도구로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다른 권능감-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인 듯 하나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어 사용한다-을 준다. 이는 단순히 어떠한 스킬에 익숙해져서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는 분명히 또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가끔 디디나 우리 할머니의 손으로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는 나는 '손으로 먹으면 더 강해진다'는 디디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디디, 진짜 정말 맛있어요. 이런 거 만드는 방법은 어디서 배웠어요?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어요?"

친구의 통역 이후 디디는 바로 이렇게 대답하신다.

"유튜브!"


내가 배탈이 났을 때 디디께서 만들어 주신 키쉬디(Khichdi), 녹두죽이다.
고모댁에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소녀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한 번은 다른 식구들에게 '키쉬디 먹고 간 언니 오늘 와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는 '키쉬디 디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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