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마 Nov 30. 2020

심장이 쫄깃거리는 릴레이 글쓰기

아이들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처음 도전해보았어요

                                               

한길문고에 상주해 있는 배지영 작가가 단톡 방에 공지를 띄웠다. 앞으로 진행할 프로그램으로 릴레이 글쓰기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 19 시대, 유일한 낙은 서점에 가서 조용히 강연을 듣거나 책을 설사 다 읽진 못할지라도 작가의 책을 사모으는 일이었다. 요즘 내 문화생활 거점은 서점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지만 참여자로서 경험하기는 기회가 거의 없다. 행사 제목을 본 순간 마음속에서 바로 호기심이 일었다. 시냇물을 끌어들여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놀았던 장소, 경주 포석정이 생각났다. 선비들이 시를 짓고 또 거기에 응하화답 시를 서로 내기하듯 짓고 있는 모습도 생각났다. 구미가 당겼다. 친구와 가족 등 그룹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용기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같이 홀로 참여하는 사람을 배려하여 즉석에서 팀을 만들어준다는 말에 덜컥 신청했다.    


배 작가는 A4 종이를 엄청 많이 준비했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쓰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B팀을 지목했다. 이 팀은 오기만 하면 그냥 가지 않고 1등 하는 팀이니까 경계하라고 하였다. 서로 경쟁의식을 불 붙인 것이었다. 웃음으로 받아넘겼지만 농담을 가장한 배 작가의 의도는 적중했다. 우리 팀원들의 눈에서 의욕에 찬 불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목은 '코로나'였다. 전 선생님, 김 선생님, 허 선생님과 같은 D팀이 되었다. 글의 개요를 짰다. 각자 경험한 것과 생각이 달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선생님들의 활발한 의견 제시로 글 방향이 차차 자리 잡게 되었다.  

   

각 팀에서 중구난방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는지 주인공을 정해서 써도 좋다고  배 작가가 팁을 주었다.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코로나 상황이 생기면서 달라진 상황을 서로 이야기하였다. 전 선생님은 한길문고 주변에서 사람을 많이 볼 수 없어서 마음이 쓸쓸하고 건물주변이 적막해졌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로 글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내용의 연결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신이 경험한 각자의 코로나 상황을 자연스러운 맥락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허선생님은 택배가 늘어나고 일이 힘들어진 배달기사님을 위해 천천히 와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라는 멘트를 문에 붙이고 음료를 내놓는 등 사회 아름다운 모습 영업이 힘들어진 자영업자, 방역하는 사람 등에 대해 말했다. 도서관에서 강사로 수업을 하고 있는 김 선생님은 코로나 상황에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면회 이야기를 쓴다고 하였다.

   

결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면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누릴 수 없게 만든 코로나 상황은 도대체  언제쯤 끝나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펼쳐가기로 했다. 계주처럼 서로 순서를 정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네 명 중 세 번째였다. 글의 처음을 담당한 전 선생님과 마지막 순서인 김 선생님에 비하면 부담 없는 순서였다. 그래도 떨렸다.   

  

1번 타자 전 선생님이 서점 주변 사거리에 있는 통닭집, 국밥집에 사람이 북적북적했던 모습을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모습과 대비시켜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시간은 5분이었다. 쓱쓱 써가는 선생님이 멋져 보였고 나는 문장을 쓰다가 틀릴 것을 대비해서 수정테이프를 준비해 놓다. 차례가 아닌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을 노트에 요약했다.


 생각이 없어질세라 막 썼다. 쓸 꺼리가 많은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였다. 학습 꾸러미, 원격수업, e 배움터, 건강상태 자가진단 시스템, 정기적인 발열체크, 급식시간의 모습, 학습발표회 등 학교 행사 준비 모습이었다. 학습발표회를 하는데 학부모를 초청하느냐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코로나 19가 아닌 상황에서도 행사를 하려면 결정할 것이 수가지인데 코로나 상황이라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았다. 마스크를 끼면  소리가 전달이 안되고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할지, 그냥 쓰고 해야 하는지, 핀 마이크를 사용해야 할 까, 아이들 소리를 녹음해야 할까, 전년도엔 대추차와 과일, 떡 간식을 비치해 놓았는데 코로나 상황인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무자로서 오만가지가 생각났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확진자가 거의 없는 지역에 있고 전교생 60명 미만이라 대형 학교의 코로나 대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마스크를 끼고 예년과 같이 모든 행사를 추진했다. 마스크를 쓴 채 평상시와 같이 학부모 중심, 학생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당위성으로 추진해야만 했던 일들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새로 생겨난 일들이 많았다.  


쓸 거리가 생각이 안 날까 봐 걱정했는데  쓰다 보니 줄줄 나왔다. 릴레이 글쓰기 원고지에 좀 더 중요한 내용을 담을 수 없을까 생각을 가다듬으며 글을 이어나갔다.

 

"긴장되어서 두 번은 못할 것 같아."

"심장이 쫄깃쫄깃 재밌네."     


우리는 마스크를 낀 상태였지만 큰소리로 웃었다. 5분씩 돌아가면서 썼는데 앞사람이 쓴 것을 미리 읽어봐야 내 글의 시작을 잡을 수 있었다. 쓰는 사람 옆자리로 가서 그동안 써놓은 것을 읽었다. "빨리 다음 순서로 바꾸세요. 안 바꾸면 부정선수!"라고 배 작가가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로 외쳤다. 부정선수인 것 마냥 그 말이 가슴을 쳤다. 앞사람이 부정선수가 기꺼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새로운 글쓰기 형식에 도전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교차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문맥이 안 이어질 것 같아요." 종이를 받아 들며 내가 자신 없는 소리를 했다. "아 괜찮아요. 이해해요." 팀원들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기 순서가 아닌 사람, 허리가 아픈 사람은 뒤에 가서 귤을 먹고 와도 된다고 배 작가가 말했다. 바꾸세요 라는 소리에  급 마무리를 하고 다음 순서의 팀원에게 종이를 넘겼다. '휴! 무사히 내 순서를 넘겼다. 정말 심장이 쫄깃하다! '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귤 먹을 시간은 도저히 일분도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서로 의논을 하거나 내가 쓸 글을 끄적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코로나에서 살아나기, 코로나 상황 등 여러 가지 의견 중 ‘코로나 생존기’로 제목을 정했다.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생활은 생존기라고 말할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서점에서 글쓰기 행사 뒷배경으로 깔아놓은 피아노 음악은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다. 글을 쓰는 내 마음도 급해지고 펜으로 글 쓰는 소리만 톡톡톡 크게 들렸다.    


선수 교체하라는 배 작가의 소리가 또 들렸다.

 " 염탐하러 왔어요." 하며  C 팀 황 선생님이 왔다.

" 우리 아주 체계적으로 하고 있어요. 1등을 향하여, 우리, 일등 가자!" 하며 자뻑 버전으로  너스레를 떨며 으쌰 으쌰 했다.    


팀원들이 모두 돌아가며 한 번씩 썼고 새로 순서를 시작했다. "전 선생님, 1번 타자 맞죠? " 배 작가가 확인하러 왔다. "우리는 제대로 FM대로 하고 있어요. 이렇게 잘하는데 무엇을 확인하러 오셨다요?" 하며 배 작가에게 말을 건넸다. 각자 한 번씩 돌아가며 쓴 지금에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농담도 할 수 있었고 다른 팀에서 하는 말소리, 웃음소리도 조금씩 들려왔다.    


“수필형식으로 쓰는 것이니 자유롭게 씁시다.”   

 

나같이 긴장한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 힘을 북돋워 주었다. "예비 작가들이라 역시 글을 잘 쓴다."는 전 선생님의 말에 "놀자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일등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작은 행사에 긴장을 하고 열을 내며 행사에 임하는 나와 팀원들을 생각하면 재밌고 웃음이 나왔다. 중장년층인 우리가 하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우리는 작품을 한 사람이 한 개씩 썼어. 잘하고 있어요." 또 전 선생님이 칭찬을 하셨다. 각자 쓴 글들을 개별적으로 보아도 작품이 된다는 말로 혼자 이해하며 좋아했다.  선생님칭찬이 필요한 상황에서  좋은 말씀을 해서 팀원들의 기분을 좋게 한다. 우리 팀원이라 우리를 더 좋게 보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디다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아." 집중하여 글을 쓰느라 자기 순서가 휘리릭 지나가자 도깨비같이 나도 모르게 지나간 시간을 허선생님이 빗대어 말했다. 그만큼 열중해서 한 것이었다.

   

쓰다 보니 결론을 낼 시간이 다가왔다. 아까 이야기한 것에 살을 붙이자했다. 이 상황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을 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는 단절이지만 한편으론 소통이다. 코로나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희망의 연대를 향해 더 단단하고 튼튼한 마스크를 준비하자.'는 글로 김 선생님이 끝부분을 멋지게 써주셨다. 이렇게 쓰니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끝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주제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영화든 글이든 결말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지는 않았지만 넓은 테이블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글의 방향을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경험은 특별했다. 앞 순서 사람이 쓴 글을 읽어 봐야 내 글을 이어서 쓸 수 있다.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협동심이 생기게 된다. 팀원들의 글 내용은 코로나 상황을 나 혼자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마스크를 쓰며 축축 쳐져 있었던 고립감을 느끼게만 했던 코로나인 줄 알았는데, 평생 못 잊을 일을 같이 이겨내고 있다는 동감과 연대의식을 확인하게도 해 준 코로나였다.     


나와 팀원들의 심장을 쫄깃거리게 했던 릴레이 글쓰기는 코로나 상황에서 영양주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효과를 느끼게 하였다. 글쓰기를 한 후 더욱 힘이 났고 당분간 의욕적으로 생활에 임하게 하는 에너지를 주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과 협해서 쓰는 릴레이 글쓰기를 다음에도 '할래? 말래?' 누군가 묻는다면 다시 '할래!' 쪽에 서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 이 행사는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했던 일을 쓴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인 한국 모델이 말을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