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새로이 시작한 드라마 시리즈 <다음 생은 없으니까>를 재밌게 시청 중이다.
나보다는 4살 어린 마흔한 살, 세 절친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그중 메인인 '조나정'은 Y대를 졸업했고, 한 때 잘 나가던 홈쇼핑 쇼호스트였지만, 지금은 경력이 단절된 다섯 살, 여섯 살('아토피'를 앓고 있는) 두 아들의 엄마이다. 극의 초반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은 조나정이 경단녀에서 다시 워킹맘으로 거듭나기 위해 쇼호스트로 복귀를 알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한창 다루고 있다.
당연히, 나도 워킹맘으로서 비협조적인 남편과 매일 싸우면서 육아와 회사일을 모두 평균 70점 정도로라도 해내려고 매일 고군분투 중인 입장으로서 조나정에 감정이입하면서 응원하면서 보게 된다. 그런데 어제 방송된 4회에서는 다른 두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첫 번째는 조나정의 동네 친한 언니이자, 둘째를 조나정의 아들들과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황진희'라는 인물이다. 언니는 조나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구원의 손길의 주는 인물인데, 멀리 사는 친한 친구들보다 이웃 조력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하면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는 몇몇 이웃엄마들이 겹쳐지면서 더욱 눈길이 갔다. 진희언니 또한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경력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나정이가 빠지기 곤란한 회식의 상황에서 나정의 아들들을 돌봐주게 되었는데, 예민한 사춘기 첫째 딸이 영 비협조적이라 곤란한 상황에서도 나정을 살뜰하게도 살펴준다. 그러면서 말한다.
"네가 내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는 거야. 근데 내가 어떻게 널 응원 안 할 수가 있어?"
그래, 안다. 극 중 가장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다. 하지만 또 나는 안다. 분명 진심으로 저렇게 서로를 응원하며 붙돋아 주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도. 나에게도 이런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양가 부모님 한 분도 없이 서울이라는 이 멀리에서 아직도 워킹맘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진심으로 위기의 순간마다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수많은 '나의 진희 언니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두 번째는 과거엔 조나정의 후배였다가, 현재는 조나정의 선배 노릇을 하고 있는 '송예나'라는 인물이다. 예나는 과거에 어떤 악연이 있었던 것인지 처음 등장부터 조나정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가득한데, 특히 조나정이 복귀를 하면서부터는 나정을 특히 심술궂게 괴롭히고 있다. 그러다 어제 4회 방영분에서는 결정적으로 예나가 펑크 낸 방송을 나정이 성공적으로 진행한 덕에 위기를 넘기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장면에서 예나는 분노에 차서 혼잣말을 한다.
"지는 남편도 아이들도 있으면서... 나는 이것밖에 없다고!!!" (기억에 의존한 멘트라 정확지는 않음)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젊고 예쁘고 잘 나가는 송예나가 굳이 경단녀 조나정을 왜 저렇게 의식하고 미워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는데, 저 대사를 듣고 첨으로 '띵'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런 이유였어?!?! 그런데 저 멘트... 낯설지가 않았다.
언젠가 우리 회사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멘트다. 우리 회사에 아주 잘 나가는 여자 상사 두 명이 있다. 입사 시기도 비슷하고, 업무 능력도 둘 다 뛰어나신 분이다. 서로 경쟁하듯 엎치락뒤치락 승진과 주요 보직을 주고받는 사이. 그런데 한 분은 무자녀에 돌싱, 한 분은 워킹맘이다. 언젠가 워킹맘이신 분이 먼저 승진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다른 한 분이 하신 멘트가 딱 저러했다. 나는 그때 저 얘기를 듣고도 충격이 컸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화려한 싱글인 그녀가 속으로는 저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니..!!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서로가 갖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갈망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인가... 물론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긴 아니겠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회사에서 일 좀 한다 하는 중년여성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싱글이면서 누가 봐도 업무에 삶의 90% 이상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 보이는 여성, 워킹맘이지만 양육에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서 업무에 70~80% 이상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듯 보이는 여성, 그리고 안 좋은 양육환경에서 오로지 사교육 뺑뺑이의 힘을 빌어 낙제점을 면하고자 60~70%의 에너지를 꾸역꾸역 쥐어 짜내고 있는 여성. 나처럼.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나정의 남편의 대사처럼 "너네 여자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회사를 다니지?"는 아니다. 우리도 너네와 똑같은 마음으로 회사에 다닌다. 나라는 존재를 일로서 인정받고 싶고, 나와 가족의 밥벌이를 내 손으로 해내고 싶다. 남편과 아이들도 소중하지만 남편과 아이들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은 아니다.
나는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그 외의 부분에서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나'를 찾아가는 각자의 방법을 선택해서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니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다음 생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