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고 있다.

by 채운

나는 어느덧 마흔 다섯 가을을 지나 초겨울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회사에선 여전히 하루하루가 번잡스럽고 바쁘다. 괜찮았다가 화가 났다가 괜찮았다가 슬펐다가 괜찮았다가 절망적이었다가 괜찮은 중에 잠깐 짬을 내어 오랜만에 글을 써보기로 하였다. 지난 블로그의 글들을 잠깐 시간을 내어 돌아보니 대부분의 일상을 전시하는 삶에서 어떠한 일상도 전시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내가 보였다. 어떠한 삶의 철학의 변화가 생겨서는 아니고, 단지 빠쁘고 귀찮아서 이긴 하지만 전시하지 않는 삶도 그런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


다만, 그나마 몇 글자씩 끄적이던 일상적인 글이 전혀 없어지고, 오로지 보고서가 쓰는 글의 전부인 삶을 살다 보니, 활자로 내 속을 드러내는 일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지게 되었다는 점이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나란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걸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에 상당히 소홀해졌음이 실감이 났다.

나는 회사 사무실 달력에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X' 표시를 하는 오랜 습관이 있는데, 간혹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아니, 군대 왔어요? 수감생활해요? 뭘 하루하루 날짜를 지우고 살아요?"하고 관심을 갖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괜히 낯이 뜨거워지곤 한다. 하루하루 그저 빨리 흘러가길 바라는 내 속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서.

굳이 굳이 따지자면, 나는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인간에 속하고, 엠비티아이로도 대문자 E인 엔프피다. 주 3-4회 새벽 조깅을 하고, 주 2-3회 웨이트를 한다. 러닝크루의 총무이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숙제 많은 사립초에 다니는 초등학생을 양육 중이고, 그 아이가 다니는 사교육 학원만 8개다. 사람들은 그 나이에 그런 에너지가 다 어디서 나는 건가 신기해 하지만, 그래서 나는 사실상 남는 에너지가 늘 0에 수렴하는 삶을 살며,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이게 맞는 건가 싶어, 나도 오랜만에 글이란 것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