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과거 1900년대의 고전이라 그런지 조금은 가볍게 읽힌 것 같다. 책도 얇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간단하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다가오는 여운은 다소 가볍지만은 않다.
주인공인 폴이 오래 교제한 로제와 14살 어린 뉴페이스 시몽 사이에서의 연애감정의 갈등을 겪는 이야기로 줄거리만 보면 흔한 삼각관계 환승연애처럼 보였다.
폴은 한 번의 이혼을 겪고, 온전한 행복과 안정감에 대하여 다시는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장기 연애 중인 로제에게 언제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39살의 여성이다.
반면 로제는 폴과의 데이트가 끝나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또 다른 가벼운 상대를 찾아 떠나는 그런 일종의 나쁜 남자. 그의 이런 점을 알고도 폴은 감정을 한정적으로 가두며 지내오다가 결국 점점 지치고 힘들어하게 되고, 그러한 찰나 자신만 바라봐주는 시몽을 만나게 된다.
일단 책 초반에 프랑스라는 배경이 주는 문화적 어색함을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시몽이 폴에게 사랑에 빠진 장면이 그랬다.
25살 청년 시몽이 자신의 집 인테리어를 위해 업무차 방문한 39살 폴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정말이지,
“응? 갑자기???”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뭔가 서사없이 이루어진 그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이런 게 첫눈에 반했다는 그런 것인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어쩌면 그냥 나만 이해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5살 청년 시몽은 그녀의 나이와 관계없이 그녀를 온전히 사랑해 주고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본인의 일까지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멈추고 그녀를 사랑하는 일에만 온전히 몰두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망치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시몽.
미래는 위해 현재를 망치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과거의 이혼의 아픔을 안고, 로제와 꿈꿀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행복하지 않은 폴에게 어쩌면 시몽은 현재 그 자체였다.
시몽은 온전히 현재를 즐겨내는 것에 대하여 그녀에게 알려주었으며, 폴이 가장 해야 하는 고민, 가장 중요한 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시몽이 폴과의 연주회 데이트를 위하여 던진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실 질문이 아닌 핑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폴이 지금 현재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고민이었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냐에 대하여 말이다.
그러니까 브람스라는 대상을 통해 폴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는 누구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을 그려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결말이 폴의 그 대답이었다.
결국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로제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폴의 깨달음은 소설의 진행 방식에서도 암시되었던 것 같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폴의 부분에서는 폴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풀어내고, 로제의 부분에서는 로제의 입장도 구구절절 상세하게 표현해 낸 것이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기보단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왔다 갔다 전환되는 듯한 방법으로 둘의 감정을 호소하듯 묘사 해 냈다.
그러나 시몽의 부분에서는 그런 작가의 호소가 덜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시몽은 폴의 감정을 알아내기 위한 서브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같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같은 문장을 통해 불쑥 그녀의 삶에 들어와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로 말이다.
폴에게 헌신적인 시몽이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많은 독자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폴을 만나러 오는 길에 또 다른 여자를 만나기로 결정한듯한 로제의 마지막 전화 장면을 보고 독자들은 더욱 분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폴의 결정은 진실했고, 자신의 답을 찾은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폴의 기다림이 그들의 완전한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하지는 못할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제를 선택한 것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의 고민을 드디어 끝낸것이다.
“잘해보려고 했다고... “라는 폴의 말처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아무리 좋아하려 노력해 보아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그 마음에 제대로 대답을 해낸 그 용기는 아름다워보였다.
39살이라는 나이는 어떤 나이 일까.
딱 지금의 내 나이이다. 내가 느끼는 39살의 느낌을 설명하자면 애매하다.
젊음과 시듦의 기분을 오가는 느낌.
어떨 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처럼 열정을 불태우다가도, 금세 '난 이미 늦었어'라고 꼬리를 내리고 움츠려드는 그런 나이.
이 두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혼란스럽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창창히 피어있는 것이 확실한 그런 나이.
지금 서른아홉의 나에게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책을 통하여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뭘까.
내가 정말 원했던 삶은 뭘까.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망치고 있는 것일까.
망친 현재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줄까.
그렇다면 희생한 과거가 지금의 내 현재를 행복하게 해 주었나.
내가 정말 브람스를 좋아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