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 19. 누드 드로잉 워크샵
굉장히 신박했던 경험 하나.
이 곳 산티아고에는 거리 곳곳이 예술적인 벽화 그림, 혹은 난해하고도 장난끼 가득한 그래피티가 수놓아져 있다. 평소에 이들의 예술적 감각이 궁금했던 나는 페북에서 만난 칠레노 친구가 드로잉 워크샵에 초대해줘 내용도 모르고 갔더랬다. 초행길이었던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고, 모든 풍경들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룰루랄라 기대에 가득찬 채 도착했다. 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래되었지만 그리 촌스럽지 않은, 군데군데 예술 조각들이 수놓아진 그 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되자 우리는 서로 쭈뼛쭈뼛 모여앉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옆에 함께 앉아있던 임산부 여성이 옷을 벗었고, 영문을 모르던 나는 태연한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익숙하다는 듯 차분히 들고온 종이에 슥슥 그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동공이 흔들리고 입은 빠짝 말라갔지만 최대한 당황하지 않게 보이게(심지어 생각없이 갔다 가방에서 학원노트와 캘리붓을 집어듬)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데, 누군가의 몸을 그리 오랫동안 관찰해 본 적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어본 적이 처음이었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의 ㄱ도 배워본 적도 없는 나는 이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손 끝으로 전달하지 못 함을 통탄하며 머리를 쥐어 짰지만, 그렇다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끝나곤 다같이 둘러앉아 서로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약 1시간 반 동안 고생해준 모델에게 모두의 그림과 함께 따뜻한 포옹을 선물했다. 모델은 행복해했고 앞으로 태어날 그녀의 아이에 축복을 내려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진심으로 마음과 마음이 닿음을 느꼈다.
함께 했던 사람들도 다양한 연령층에,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말 그대로 로컬 칠레 사람들이여서 좋았다. 타투이스트, 애니메이션 감독, 작가, 영화를 공부하는 대학생 등, 취미로 그리기엔 너무나도 잘 그리고 각자만의 개성이 강했고 그들의 개성넘치는 그림만큼이나 그네들의 생도 버라이어티 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처음봤다 하기에 어색할 정도로 서로 친해져 다음에 또 보자며, 뜨거운 포옹도 나눴다. 또 한 번의 잊지 못할 칠레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