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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레워홀러 Feb 21. 2020

칠레에서 만난 '기억'의 의미-역사박물관 견학

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6. 기억


쉼 없이 달려왔던 1달여간 어학원 수업이 끝났다. 스스로에게도 여유를 주지 않을 만큼 몰두해봤고 욕심만큼 따라오진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래도 체계적으로 많이 배워왔던 듯하다. 무슨 일을 하든 아쉬움은 남으니, 어떻게 잘 기억에 남기느냐 또한 시작만큼 중요한 일이겠지.



B1-1(B uno uno), B1-2(B uno dos) 반을 연달아했는데 첫 반에서 나와 인도에서 온 친구 하나만 반을 이어갔고, 나머지 유럽 친구들은 한 달이면 충분하다며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고 했다(사람 정원이 어느 정도 차지 않으면 수업을 폐강하는 경우도 있다) 책과 프린트물을 통해 계속해서 직설법 시제(특히 부정 과거 vs. 불완료 과거 차이) - 접속법 - 명령법을 반복해 나갔다. 돌아보니 현지인들이 어떤 문법을 많이 쓰고 덜 쓰는지 어느 정도 알겠더라.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물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사라지는 건 불 보듯 뻔했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언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칠레행 첫 번째는 바로 스페인어 마스터였으니까. 햇살 눈부셨던 마지막 전 날, 수업 듣는 학생들을 모두 한 데 모아 근처 역사박물관을 견학한다고 했다.

(어학원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이야기는 다음 회를 기대해주시라)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 주로 유럽 친구들이 많았고 그다음으로 중국, 인도, 한국 순이었다.


조별로 팀을 이뤄 한 시간 여 동안 박물관 내에서 소개된 칠레인 한 명을 선정해 발표하는 게 과제였다. 1층엔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기록들과 고문당했던 사람들의 영상, 그 당시 아이들의 모습들을 담아놓고 있었다. 위층으로 가니 당시에 희생당했던 일반인, 혹은 인권 변호사, 운동가 등 다양한 칠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커다란 벽 한 칸을 수놓았던 모든 희생자들의 사진 전시가 인상 깊었다. 간혹 중간중간에 빈 사진들이 있었는데, 생사를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란다. 


칠레인에게 듣는 칠레의 역사 이야기는,

참 뜻깊었다.





남미에서 만난 기억의 의미

남미에는 기억(La memoria)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볼 수 있다. 어딜 가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누군가를 혹은 어떤 시대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하지만 누군가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게, 어떤 행위이며 무슨 의미일까. 늘 많은 사람에게 많이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꿈꿨는데, 과연 많이 기억될수록 좋은 걸까. 좋고 나쁨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곳은 참 많을 생각하게 했다. 역사는 과거지만, 다시는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최선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일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동시대를 살아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잊고 싶은 상처지만, 반드시 후대에 전해줘야 할 유산임이 명확하기에, 산티아고의 인권 박물관은 피노체트 독재 시절 아스라이 사라져 간 희생자들의 기억을 붙잡는 곳인데,  매번 올 때마다 다른 기억들을 만나 참, 새롭다.

 

킨따노말역 근처에 위치한 기억과 인권 박물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박물관이었다. 족히 10번은 간 듯하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 조지 버나드 쇼




80년대 칠레의 모습. 당시 쿠데타로 장기 집권에 성공한 피노체트 군부 체제는 17년 간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영상 속에서 그들은 군 경찰들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스크럼을 짜고 정부 건물 앞에서 타도를 외치거나, 그러다 정말 개 맞듯이 맞다 어디론가 사라진 아무개의 부모가 지금까지 눈물짓고 있었다. 자꾸만 우리네 모습이 겹쳐진다. 80년대 억압받던 시절, 모든 게 제재당했던 시절. 물론 난 그 언저리에도 가보지 않았지만(다행히도) 그때 당시의 그 무언가만 보더라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일 때가 있었다. 한창 삶에 대한 고민 많던 그 시절에 나에게는 몇몇 겹쳐지는 잔상들이 남아있다.



8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 당시 피노체트는 장기 집권에 성공한 한국의 박정희를 존경한다고까지 말했다.




대학시절 늘 문과대 건물로 가는 길목에 80년대 학생운동 중 사망한 한 선배의 기념비가 있었다. 늘 그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쳤는데, 어느 따뜻한 봄날 문득 그 기념비 앞에 하얀 백합 꽃다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순간 이 아름다운 봄날이 누군가에게는 눈물로 가득 찬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꽉 막혔다. 그리고 매년 복학 후에도 봄날만 되면 그곳엔 백합 다발이 놓여 있었다.


신경숙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에는 불행했던 과거 시절 누군가가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억압된 세상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스크럼을 짜고 캐캐 한 가스 냄새를 함께 맡거나, 혹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관계에 대한 고민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과연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을까.
 



nunca mas"다시는 안 돼" 과거 청산의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이다.



지금은 그 모든 게 캐캐 묵은 과거가 되어버렸지만(이 곳도 그곳도) 누군가는 아직도 따스한 봄날만 되면 잃어버린 사람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도 그때 그 시절을 함께 겪었다는 뭔가 모를 동질감이, 참 신기하고 고맙다. 이 이국적인 곳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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