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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메론 프라이 Apr 04. 2023

덕훈은 어떻게 전소연을 만나게 되었나?

이것도 팬픽이라면?팬픽인가? : 덕훈의 그저그런 (여자)아이들 입덕기 2




덕훈은 어떻게
전소연을 만나게 되었나?




그건 2016년 1월도 22일이나 지난 어느 금요일 저녁 벌어진 일이었다.


덕훈이 새해를 맞아 야심차게 가입한 독서모임의 때늦은 신년회가 취소된 날, 그는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독서모임의 주관자가 보내온 톡에는 갑작스런 개인사정으로 신년회를 취소해서 미안하다는 취지의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ps"를 써서 덧붙인 문장에는 오늘 엠넷에서 새 오디션 프로가 시작되니 신년회 대신 그걸 즐기라는 문장이 생뚱맞은 물결표시와 함께 펼쳐져 있었다.


덕훈은 오디션프로가 독서모임 신년회의 대체재로 활용되는 것이 가능하냐? 는 의문이 들었지만, 주관자의 널뛰는 의식의 흐름이 싫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뒤로 한 채, 덕훈은 원룸과 투룸이 뒤섞여 있는 신축 다세대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403호 쪽으로 걸어가는 덕훈의 느린 걸음은 봉지 속 물건들이 들려주는 금속음을 따라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덕훈이 403호에 다다르자 센서등이 환하게 켜졌다. 문앞에 선 그는 연주를 앞두고 건반을 튜닝하는 피아니스트 마냥 제법 빠른 손놀림으로 도어락의 숫자들을 눌렀다. 그러자 도어락은 짧은 도레미파를 날리며 잠금을 해제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덕훈은 우선 거실 벽에 붙어있는 보일러 컨트롤러의 온도를 26도로 바꿨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빌트인 인덕션 위에 3분의 2쯤 물이 담긴 냄비를 올리고 인덕션의 온도를 9까지 올렸다.


집안을 30분 정도의 분주함으로 가득 채운 뒤, 덕훈은 짜빠구리와 동치미로 나름 신박한 저녁 한 상을 차렸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무알콜 맥주를 꺼내 TV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채널 22번에서는 오디션 프로가 막 시작한 것 같았다.


짜빠구리를 두어 젓가락 밖에 들이키지 않았지만 덕훈은 오디션의 컨셉이 무엇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덕훈에게 A급 태풍처럼 기침이 몰려왔다. 무언가 기관지를 자극한 것 같았다.


그는 스무 번도 넘게 기침을 쏟아냈다. 가슴이 아릴 정도가 되자 기침은 열대성 저기압처럼 얌전해졌다.


기침이 휩쓸고간 거실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거실 테이블은 면발로 만들어진 잔해가 가득했다.


설상가상으로 눈물과 콧물은 덕훈의 시야와 머릿속을 수재민의 심정처럼 뿌옇게 만들었다.


덕훈은 옆에 있던 화장지를 뽑아 A급 태풍이 휩쓸고 간 재해현장을 서서히 복구했다.


복구가 끝나고 벗었던 뿔테안경이 제자리를 찾자, 안경 너머로 TV속의 소녀 한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가슴에 "큐브 전소연"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이름표를 붙히고 있었다.


그녀의 양 옆에도 다른 소녀들이 있었지만 덕훈의 시신경을 자극한 피사체는 그녀뿐이었다.


트윈테일에 네이비색 헤어밴드를 다부지게 묶은 머리, 그리고 가녀린 목에 걸린 황금색 체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또, 야무지게 보이는 입술과 짙은 눈화장은 그녀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반면 흰색 반바지의 웨스트라인에 슬그머니 걸려있는 그녀의 오른손은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더 내려온 채 마이크를 쥐고 있는 그녀의 왼손도 긴장한 듯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3초도 안되는 짧은 스텐바이였지만 노래가 시작하기 전부터 덕훈의 눈동자는 온통 그녀만을 흡입하고 있었다.


비트가 떨어지자마자 “Yeah !!”로 시작해서 “You know that”을 지나 흐르는 그녀의 음성은 길이 잘든 엔진처럼 자연스럽게 가속을 밟아 나갔다.


마지막으로 “미쳐~!”를 외치며 끝맺은 그녀의 시선은 1분도 안되는 분량임에도 덕훈을 미치게 만들었다.


화면 안에서는 심사위원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갑자기 한 심사위원이 그녀에게


- 랩도 혹시 할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한 발을 빼며 수줍은 웃음으로 돌발적인 의아함을 보이더니 다시 앞으로 한발 내디디며 확신이 가득한 언어들로 그 의아함에 답을 주었다.


- 살다 보니 붙여진 뭐 하나 할 애

- 늘 확신에 차있는 상태

- 누가 뭐래도 내일에 대해서는

- 나는 절대 부끄러워 안해


덕훈의 살갗은 삶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온몸을 휘감은 스무 살 언저리의 소녀가 질러대는 발화로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거실의 분위기로 시작된 젓가락의 태업은 냄비 속 짜빠구리의 면발을 퉁퉁 불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면발의 사정은 살면서 자신을 포함해 주위에 어느 누구에게도 저런 삶에 대한 확신을 전해들은 바 없는 덕훈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덕훈의 머릿속은 이미 그녀의 가슴에 붙어 있는 "큐브 전소연" 이라는 이름표가 전송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그녀를 따르고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그녀에게 투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120분가량의 시간은 눈치 없이 빠르게 흘러갔고, 곧 이어 오디션 프로의 다음 주 예고가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덕훈은 너무 쉽게 자신의 다음 주 금요일 밤 스케줄과 향후 몇 달 동안의 금요일 저녁 스케줄을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금요일들이 결정된 그 금요일 밤 덕훈은 소파에 누워 포만감을 가득 안은 채 잠을 청했다.



https://youtu.be/sb3MsD5h8mY
덕훈이 전소연을 처음 만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중 전소연의 첫 등장 장면



공허해진 공기가 거실에 스며들자, 전소연의 랩에 견줄 만한 덕훈의 “드르렁거림”이 좁은 거실을 가득 매워버렸다.




결국 덕훈은 이렇게 “전소연”을 애정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그녀의 첫번째 음악방송 1위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그는 자신이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덕훈은, 그녀가 첫 트로피를 거머쥔 그날,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녀와 (여자)아이들의 영원한 네버랜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덕훈은 (여자)아이들의 팬이 되고야 말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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