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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메론 프라이 Apr 18. 2023

선천성 연애 장애 증후군 : 유돈노 왓 러브이즈 신드롬

<life is a 픽션> 일회성 단편소설



영인이 그날밤,

그 사이트를 열어보게 된 건,


순전히, 데이비드 호닉의 소설 [You don't know what love is]의 번역판이 출간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날밤,

영인은 자신의 이런 문학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을 가동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세계최대의 검색 엔진의 메인페이지를 모니터에 띄웠다. 모니터 한가운데에는 돋보기를 품은 검색창의 괄호가 영인의 손가락이 강림하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여 검색창에게 은총의 알파벳을 선사했다. 하지만 검색창을 채워야할 영어 문장이 짧지는 않았기에 그 은총의 알파벳들은 간신히 간신히 뛰엄뛰엄 괄호를 채워나갔다. 반면, 마지막으로 채워진 "한국어판"이라는 한글은 무난하고 거침없이 빈칸을 매꿔나갔다.


모든 단어들의 입력이 끝나자 영인은 최후의 은총을 하사하는 교주 같은 표정으로 키보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려 짧은 심호흡을 빈 공간에 쏟아냈다. 그 호홉이 끝나자마자 영인의 오른손 중지는 경쾌하게 엔터키를 터치하며 은총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영인의 은총을 받은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은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27인치 모니터 화면을 한가득 채운 검색 결과를 액정위로 뿌려주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뿌려진 셀 수 없는 언어들은 첫 페이지도 모자라 무지막지한 페이지수를 모니터 하단에 선명하게 박제해 놓았다.


결과를 받아 든 영인은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호기심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의 눈과 그녀의 오른손은 스크롤을 따라 건조하게 나열된 하이퍼 텍스트를 훑어내려갔다.


몇 개의 페이지가 억지로 넘어가자 영인의 입에서는 하품이 튀어 나왔다. 그녀는 하품을 해대며 하품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이라는 것을 절실히 실감했다.




영인이 열두번째 페이지를 열고 스크롤이 페이지 중간쯤을 지날 때, 흥미로운  텍스트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끌어 당겼다.


"If you never know what love is, just click here"


영인은 파란색으로 언더라인이 되어있는 그 직관적인 링크를 망설임없이 클릭했다.


새로운 창이 모니터 위로 떠올랐다. 새창은 약간의 로딩이 었지만 천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줬다.


그 곳에는 그저 사진한장이 놓여 있었다. 그건 한 흑인여성의 사진이었다. 영인이 처음 보는 여자였다.


그 흑인여성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하얀 꽃장식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속 눈썹이 긴 큰 눈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채 우측 상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감미로운 기타소리가 스피커 위로 흘러 나왔다. 신비스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명료한 여성의 목소리가 기타 소리에 실려 영인이 있는 공간을 가득 메웠다. 영인은 알 수없는 마법에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인은 그녀의 목소리에 홀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오른손을 움직여 화면 가운데에 놓여진 여자의 사진을 클릭했다.


그러자 새로운 페이지가 영인을 맞이했다. 새롭게 열린 페이지에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그녀의 구미를 끌어 당겼다.




그 페이지는 키프러스의 자브린스키 박사란 사람이 발견한 새로운 질병에 대해 설명을 전하고 있었다.


그 질병의 통속적인 이름은 <You don't know what love is> 신드롬 (Syndrome)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선천성 연애 장애 증후근" 쯤 되는 병이었다.


반면, 자브린스키 박사가 붙인 이 병의 의학적 명칭은 아가타카타가(agatacataga) 증후근이었다. 이 병에 이런 별칭이 붙은 것은 이 질병의 특이한 의학적 성질과 관련이 있었다.


자브린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있는데, 그 호르몬은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PEA)이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뇌의 시상하부를 관장하는 유전자의 이중나선구조 중 염기 결합 순서가 연속적으로 아가타카타가 (agatacataga)의 순서로 배열되기도 하는데... (a는 아데닌, g는 구아닌, c는 시토신, t는 티민)


이런 유전자 배열을 갖게 되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도파민의 성분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PEA)의 분비를 가로막는 엔티페닐에틸아민 (antiphenylethylamine-APEA)이라는 물질을 활성화시키게 되고, 이 물질이 결국 연애감정의 발생을 가로 막는다는 것이다.


또, 자브린스키 박사에 따르면 이 질병은 자각증세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 자신이 이 질병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지 못 한다고 한다.


그는 30세까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사랑의 설레임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질병을 심각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질병에 걸릴 확률은 5십 만분의 1 정도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이 병의 치료법은 자브린스키 박사가 만들어낸 맞춤식 식이요법이 거의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식이요법에 사용되는 음식은 방울토마토나 꼬마 옥수수 같은 유전자 조작식품이라고 한다.


이러한 식이요법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자브린스키 박사는


"이 질병은 그 특이한 유전자 배열을 깨야 고칠수 있는데, 문제의 유전자의 배열을 후천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유전자 조작 식품을 꾸준이 섭취해 유전자의 배열을 조금이라도 흐트러 놓는 길 밖에 없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다 읽어낸 영인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어떤 말을 읊조렸다.


그 말은 바로 "혹시....내가....?" 였다.


우선, 영인은 현재 만 32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이 집을 다니기 시작한 3살 무렵부터 이제 막 한 회사의 대리로 승진한 지금까지 그 어떤 이성이나 동성에게도 설레임이나 떨림 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리고 평생 한번도 연애를 해 본적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순수한 모태솔로 그 자체 였다.


영인은 갑자기 자신의 기구한 팔자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명절 마다 얼마나 많은 잔소리와 핀잔을 얼마나 많은 가족과 친지들로 부터 들어야 했던가?


또, 친구들의 그 많은 되도않는 조언과 동정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 동안 그녀는 얼마나 자신을 스스로 원망했던가?


하지만, 그녀는 오늘 이 순간, 그저 기뻤다.


자신이 50만명중 1명이 아닐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다른 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 처럼 일반적인 사랑을 느낄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영인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향해 맹렬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즉각 보여줘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녀의 행동은 심플하고 단호했다. 그녀는 충전중인 스마트폰을 끄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있는 보라색 아이콘을 검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바로 새벽 배송 업체의 아이콘이었다. 이쯤 되면 누구나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영인의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아까 그 신비한 노래가 흑인 여성의 미소위로 계속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여성의 사진 아래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이렇게 뿌려져 있었다.


"You Don't Know What Love Is -  Dinah Washington"



   

그러나 저러나, 영인이 찾던 데이비드 호닉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의 번역판은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디나 워싱턴 (Dinah Washington)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 유튜브 공식 오디오 클립





life is a 픽션
written by 카메론 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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