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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성완 Aug 06. 2018

내 이름은 소망. 16살이야.

프롤로그




 안녕, 인간 여러분! 내 이름은 소망. 올해로 십육 년째 한 핵가족 공동체에서 애교를 전담하고 있어. 이 집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무뚝뚝한 인간들 뿐이라 내 역할이 꽤 중요해. 덕분에 이 나이가 되도록 은퇴도 못하고 여전히 현역이라니까. 뭐, 그렇다고해서 불만은 없어. 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든. 너희들도 알겠지만 우리 동물들의 사랑은 순수하고 맹목적이지. 그들 모두가 나로 인해 더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 그리고 내 사지가 말을 듣는 동안만큼은 그들에게 내 사랑을 모두 전해주고 싶어. 그들이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하지만... 내 나이가 좀 많은 게 아니잖아? 사람으로 치면 여든이란 말이지. (그러니 내가 여러분에게 반말하는 걸 이해해줘.) 내가 뉴스룸에 나간다면 화면 아래 이런 자막이 뜬다는 뜻이야.



"반려견 소망이(80)"



  내 나이는 손석희 선생보다도 많아. 그가 날 인터뷰할 땐 단어를 아주 신중히 골라야 할 거야. 아무튼 내 사정이 그렇다보니 나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지난 견생을 정리하고 싶어졌어. 물론 주치의가 말했듯 내 몸은 앞으로도 5년은 끄덕없을 기력으로 가득하지만, 미리 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나의 인간 친구들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테고 말이야. 그래서 난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에게 말을 걸기로 했어. 언제나 그렇듯 중간 정도 높이의 앓는 소리를 내면서. 그런데 글쎄 녀석이 이러는 거야.


  "없어."


 그래서 다시 한 번 같은 소리를 냈지? 그랬더니 이번엔 더 단호하게,


  "안 된다니까."


  이런단 말이지? 내가 간식이라도 던져달라고 그러는 줄 알았던 모양이야. 도대체가 저렇게 둔해서 무슨 영화를 만들겠다는 건지. 물론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녀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꽤 합리적인 데다 만약 진짜로 간식이 날아오면 기꺼이 받아먹어줄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합리적일 거면 왜 영화나 만들고 있는 거야? 아무튼 그래서 난 재주를 좀 부리기로 했어. 무려 십육 년 만에 처음으로.


  "야."


  그때 녀석의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십육 년 동안 기르던 강아지가 자신들의 말을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 분명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겠지! 그런데, 아니. 녀석은 그저 헛웃음을 한 번 내뱉더니 이렇게 묻더라고.


  "왜."


  왓더멍! 그때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 줄 알아? 그동안 내가 고민하며 설쳤던 새벽잠과 먹다 남긴 밥과 간식이 떠올라서 말이야. 난 이럴 때면 늘상 하듯이 앞발로 내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 그런데 그러다보니 그냥 이해가 되더라.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하고. 게다가 차라리 잘 된 일 같았어.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서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지.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내 얘기."


  녀석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어.


  "아, 알겠다. 회고록 같은 걸 쓰고 싶구나?"


  "눈치 하난 빠르네."

  

  "음.. 바쁘긴 한데... 재미있을 것 같긴 하네."  


  그렇게 말하는 게 녀석의 성격이랄까. 속으론 이미 다 결정을 내려놓고선 겉으론 아닌 척을 한다는 것이고,


  "그치?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래?"


  "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일을 시작하는 게 굉장히 느리다는 거야. 하지만 난 녀석을 꿰고 있거든. 그래서 난 다시 앓는 소리를 시작했지. 아주 끈질기게. 내가 이 방면으로는 결국 녀석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알겠어. 당장 시작하지. 기다려봐."


  그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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