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기분 전환 겸 외출을 하려고 가방을 챙기다 그 속에서 와사비를 발견했다. 덩그러니 놓인 와사비를 잡는 것과 동시에 며칠 전의 시간 속을 멍한 눈으로 쫓았다. 토요일이었을까, 4일 전이구나. 산책하러 들어간 마트에서 유일하게 집어온 물건이었다. 가방에 넣어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다. 뒷면에 쓰인 '냉장보관' 탓에 영 찜찜했다. 어미의 젖을 먹고 단잠에 늘어진 어린 강아지의 배처럼 통통해진 와사비. 부엌으로 가져가는 길, 그리고 냉장고와 그 옆 쓰레기통 사이에서 그 순간 가장 중대한 고민에 빠진다. 버릴 것이냐, 먹을 것이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따본 뚜껑 사이로 퓩 하고 가스가 빠져나간다.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납작해진 와사비를 살짝 눌러 냄새를 맡아본다. 이상한 듯도, 괜찮은 듯도 하지만 가스가 이만큼 찼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버리기로 마음먹는다. 7천원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이미 상한 와사비는 되돌릴 수 없다. 먹지 못한다면 버리는 것이 맞다.
살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일들이 생긴다.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관계들이나 털어내지 못해 마음에 담아두게 된 지난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상해버린 마음. 고작 7천원 짜리 와사비를 버리는 일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데 깊은 애정을 쏟았던 사람이나 긴 시간을 녹여냈던 일들이라면 마음에서 툭툭 털어내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짐들을 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우듯 탁 하고 비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에 넣자마자 '이건 독이다!' 하고 뱉어내고 싶은 의지와는 다르게 그 모질고도 쓴 기억들을 나는 꼭꼭 씹어 삼킨다. 길고 고통스러운 소화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제야 버려도 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를 떠날 때는 그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너덜너덜한 껍데기에 불과할 때까지 나는 내 안에서 반복해서 되새김질한다.
이제부터는 쓰레기통에 버린 와사비를 생각하기로 한다. 지나버린 관계는, 상해버린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은 미련이 남더라도 버려야 한다. 혹시나 그래도 어쩌면이라는 말로 옆에 두려 하면 영혼은 탈이 난다. 몸에 상한 음식을 들이지 않듯 내 영혼에 상한 마음을 들이지 말자. 7천원이 아니라 7천만원이라도, 7년이라도, 인생에서 때가 지나버린 것들이 있을 곳은 내 마음속이 아니라 딱 한 곳, 쓰레기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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